제목 | 깨끗하고 사랑 가득한 마음의 성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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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현희 | 작성일2019-11-14 | 조회수1,104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히브리인들이 50년 전에 파괴된 솔로몬의 성전을 다시 지으라고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에 의하여 그들의 고국으로 돌려보내졌을 때, 제단이 그 기초 위에 다시 세워졌고, 제단 위에는 아침저녁으로 매일 드리는 번제물이 탔고, 매달 초하룻날의 특별 번제물과 주님께 봉헌된 명절들의 특별 번제물이나 개인이 봉헌하는 번제물이 탔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배에 필요불가결하고 의무적인 것을 복구한 다음, 그들은 돌아오는 다음 해에 예배의 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즉 외부적인 것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은 언제나 영원하신 분을 공경하기 위하여 한 것이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필요 불가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인데, 사랑은 마음속에 나타나고 소멸되지, 다듬은 돌과 같진 나무와 금과 향으로 나타나고 소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을 공경하는데 보다는 한 나라나 한 도시의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데 더 알맞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정신의 성전을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벽과 대리석으로 되어 있지만 사랑이 가득찬 사람들이 들어있지 않은 성전으로는 만족해하지 않으십니다. 나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합니다만, 깨끗하고 사랑 가득한 마음의 성전만이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고, 당신의 빛과 더불어 그 안에 거처하시며, 지방과 도시들을 그 기도의 장소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따라서 분류하는 평가는 어리석은 평가입니다. 하느님께 기도하는 집들에서 왜 호화로움과 장식에 관하여 경쟁을 합니까? 유한한 것이 솔로몬의 성전이나 모든 왕궁을 합친 것보다도 열배나 더 아름답다 하더라도 혹 무한하신 분을 만족시켜 드릴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떤 공간이나 어떤 물질적인 화려 속에도 들어 계실 수 없고 그것으로 공경을 받으실 수 없는 무한한 분이신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 계시면서 그것을 당신을 마땅하게 또 가능하게 공경하기에 어울리는 유일한 장소로 생각하시고, 또 거기에서 공경받기를 원하기까지 하십니다. 의인의 정신은 사랑의 향기 속에서 그 위에 하느님의 영께서 감도시는 성전이고, 머지않아 하늘에서와 같이 삼위일체이신 영께서 실제로 머무르실 성전이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석공들이 성전의 기초를 놓자마자 다윗의 칙령에 따라 사제들이 제목을 입고 나팔을 가지고 오고 레위파 사람들은 심벌즈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인자하시고 그분의 자비는 영원하시니 하느님을 찬미해야 한다’ 하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몹시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성직자들과 장로들은 전에 있었던 성전을 생각하고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래서 애처로운 목소리와 기뻐하는 목소리가 너무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구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성전을 짓는 사람들을 괴롭힌 이웃 백성들도 있었다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도 한 분 뿐이시고 참 하느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성전 짓는 사람들과 같이 짓겠다고 제안했을때 성전 짓는 사람들에게 물리침을 당한 것을 복수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장애로 인해서 하느님께서 공사를 계속하기를 원하지 않으신 동안은 공사가 중단되었었습니다. 이것은 에즈라서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을 우선 만들어 놓지 않으면 하느님을 찾아도 소용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 속에 계십니다. 사랑 속에 자리를 잡는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을 힘들게 찾을 필요 없이도 하느님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의 모든 계획에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여러분, 증오의 장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을 더 위대하게 만들었습니까? 더 부유하게 했습니까? 더 행복하게 만들었습니까? 증오나 원한은 절대로 유익하지 않고, 혼자인 사람은 결코 강하지 못하며,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사랑받지 못합니다.
오늘도 하느님의 성전이 그 영원한 기초 위에 세워지는 동안 환희의 노래와 울음이 있습니다. 지금도 공사를 반대하고,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 곳에서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서가 아니라 고레스 명령에 따라서, 즉 정신의 목소리의 명령에 따라서가 아니라, 세상의 명령에 따라서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질이 낮았던 과거, 좋지 않고 지혜롭지 못해서 하느님의 분개를 유발한 그런 과거에 대해서 어리석고 인간적인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마치 우리가 빛의 시대에 있지 않고, 오랜 옛날의 안개 속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성전을 위한 돌은 내 영원한 영과 더불어 나 이고, 내 말과 새로운 믿음을 따르는 모든 사람도 돌일 것입니다. 무형의 돌, 불이 붙은 돌, 거룩한 돌, 그리고 빛이, 새 성전의 빛이 온 땅에 퍼져서 지혜와 성덕으로 감쌀 것입니다. 그리고 밖에는 과거가 그들에게 순전히 인간적인 이득과 명예의 근원이었기 때문에, 불순한 눈물로 그것을 서러워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만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육체 안에 갇혀 있는 가엾은 여러분의 영혼,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흩어졌던 양들처럼 양의 우리로 돌아옵니다.’하고 말하고자 하지 않는 여러분의 고집 센 생각으로 압도하는 여러분의 가엾은 영혼이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자 하지 않는데, 이것도 벌써 나쁜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느님께는 그 말을 드리시오. 여러분이 여러분의 영혼의 부르짖음을 약하게 만들더라도, 보편적이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의 집에서 추방을 당해서 불행한 여러분의 영혼의 탄식을 하느님께서는 들으십니다.
점진적인 시편의 말씀을 들으시오. 여러분은 여러 세기 전부터 높은 도성, 참 예루살렘, 천상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길손들입니다. 그곳에서 즉 하늘에서 여러분의 영혼이 내려와서 육체에 생명을 주었고, 그곳으로 여러분의 영혼이 돌아가고자 합니다. 왜 여러분의 영혼을 희생하고자 하고 그들에게 나라의 상속을 잃게 하려고 하십니까? 그 영혼들이 사마리아에서 잉태된 육체 안에 내려온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그 영혼들은 오직 한 분뿐이신 아버지에게서 옵니다. 그들은 유다나 갈릴래아, 페니키아나 데카폴리스의 영혼들이 가진 것과 같은 창조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 이 기억과 이 갈망을 자라게 하시오. 여러분의 영혼의 문을 여시오. 빛이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오! 생명이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오! 진리가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오. 길이 뚫리게 하시오! 모든 것이 햇살처럼, 춘분 추분의 물결과 거센 바람처럼 들어가게 해서, 그 배에서 나무가 높은 곳을 향하여 우뚝 솟아 올라서 주님 곁으로 점점 더 가까이 가게 하시오. 귀양살이에서 나오시오! 나와 함께 이렇게 노래하시오. ‘저 님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실 때, 영혼은 기쁨을 꿈꾸는 것 같다. 우리 입에는 미소가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더 없는 기쁨이 가득하다. 이제는 사람들이 말하리라. <주님이 우리를 위해 큰 일을 하셨다>고’ 그렇습니다. 주께서 여러분을 위해 큰 일을 하셨고, 여러분은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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