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미나의 비유(루카19,11ㄴ-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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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19-11-20 | 조회수1,34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미나의 비유(루카19,11ㄴ-28)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임금의 명령을 거부하고 모두 죽음을 받아들인다. (2마카 7,1.20-31)
화답송 시편 17(16),1.5-6.8과 15(◎ 15ㄴ 참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미나의 비유를 드신다. (루카19,11ㄴ-28)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제1독서 (2마카7,1.20-31)
"너희가 어떻게 내 배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준 것도 내가 아니다. (22) ~ 이 박해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내가 그분의 자비로 네 형들과 함께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 (29)
마카베오서 하권 7장은 어떤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 이야기를 전한다. 일곱 아들은 각기 임금 앞에 불려가 고문을 당하며 왜 자신이 고통을 달게 받는지 설명한다. 어머니는 두 시점에서 개입한다(2마카7,20-23; 26-29)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들의 뒤를 이어 죽는다(2마카7,41).
어머니와 아들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유다인의 정체성을 명확히 구분해 주는 실천 사항들, 곧 할례, 안식일 준수 그리고 음식에 관한 법 때문에 고문을 당하고 죽는다.
순교자들이 엄청난 고통 한가운데서 자신들의 신앙을 굳게 보존한 동기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다.
둘째 아들은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우리를 일으시키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2마카7,9)라고 말한다.
셋째 아들은 자기 혀를 내밀고 손을 내뻗으며 "이 지체들은 하늘에서 받았지만, 그분의 법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것들까지도 하찮게 여기오. 그러나 그분에게서 다시 받으리라고 희망하오."(2마카7,11)라고 말한다.
넷째 아들은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 그러나 당신은 부활한 생명을 누릴 가망이 없소."(2마카7,14)라고 지적한다.
끝으로 어머니는 일곱째 아들에게 조언하며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내가 그분의 자비로 네 형들과 함꼐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2마카7,29)하고 말한다.
마카베오 하권 7장 30-38절에서 일곱째 아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화해하시기 전에 그들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이 고난을 받게 하신다고 말한다(2마카7,33).
그는 순교자들의 고난으로 "온 민족에게 정당하게 내렸던 전능하신 분의 분노가 끝나기를" 간청한다고 말한다(2마카7,38).
이 말은 마카베오 하권 제4부(2마카10,10-15,39)에서 길게 전개되는 속죄 제물의 사고를 도입하는 것이다.
마카베오 하권의 설화 구조에서 고난을 통해 배우는 가르침과 순교자들의 죽음이 갖는 속죄의 가치로 인해 하느님께서 유다 마카베오 때 이스라엘을 쇄신하시고 예루살렘의 성전을 정화하실 수 있게 된다.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복음(루카19,11ㄴ~28)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가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1ㄴ~13)
사실 루카 복음 19장 11절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비유 하나를 말씀하신 것으로 나온다.
당시 예수님의 일행은 예루살렘 입성을 바로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제자들 및 청중들이 예수님과 자캐오와의 대화를 듣고 있는 현장에서 미나의 비유가 주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가정에 구원을 선포하시면서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루카19,10),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 및 청중들이 이제 예수님께서 머지않아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로서, 자신들에게 현세적 부귀영화와 로마로부터 정치적 해방과 자유를 찾아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아 주시려고 '미나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 비유는 마태오 복음 25장 14~30절의 탈렌트의 비유와 비슷하다.
그러나 화폐의 단위 사용, 등장 인물의 숫자의 차이가 있고, 루카 복음사가만이 사람들이 귀족이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보고를 첨가하고 있으며, 또한 비유가 주어진 시기가 마태오 복음은 예루살렘 입성 후이지만, 루카 복음은 입성 직전이라는 것이 두드러진 차이이다.
또한 탈렌트의 비유가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소명과 은사에는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에 대해 충성을 다하면 동일한 상급인 구원이 주어질 것임을 강조한 반면에, 미나의 비유는 최종적으로 실현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기회를 선용한다면, 그 선용한 결과에 따라 상급도 차등있게 주어질 것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비유는 예수님께서 각기 다른 시기에 주신 다른 비유인 것이다.
이 비유에서 '귀족'에 해당하는 '안트로포스 유게네스'(anthropos eugenes; a men of noble birth)에서 '유게네스'(eugenes)는 '좋은'(good)을 의미하는 접두어 '유'(eu)와 '출생', '태생'을 의미하는 명사 '게노스'(genos)의 합성어로서 '태생이 좋은'(well-born), '고귀한 혈통'(of noble raw)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어떤 특정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하는 가상 인물이다.
귀족이 먼 고장으로 떠나가 왕권을 받아 올 때까지는 아직 임금이 아니다.
여기서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느님께 가신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음, 즉 그의 부재(不在)를 의미한다.
귀족이 가는 목적은 왕권을 받아 다시 오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오려고'에 해당하는 '휘포스트렙사이'(hypostrepsai; to return)는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다'는 의미를 지닌 '휘포스트레포'(hypostrepho)의 부정사로서, 영광과 존귀와 위엄의 본래 지위를 받아 가지고 다시 되돌아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난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이 용어는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서 재림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이며, 다시 오실 때에는 심판관과 통치자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오실 것이다 (마태24,30).
한편 루카 복음 19장 13절의 '종'에 해당하는 '둘로스'(dulos; servant)는 '둘루스 헤아우투'(dulus heautu; his servants)에서 나온 말로서, 귀족이 부른 종들이 자기 휘하에서 자신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종들임을 나타낸다.
원래 '둘로스'(dulos)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노예'를 가리키며, 여기서 '자기자신의'(heautu; his)가 첨부된 것은 오직 주인만을 위해서 살아야 됨을 보여 준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또는 모든 하느님 나라의 백성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그리스도의 종들로서 복음과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의 탈렌트의 비유에서 주인이 재능에 따라 차등을 두어 종들에게 탈렌트를 분배한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귀족이 열 종들에게 각각 한 미나씩 균등하게 배분해 주었다.
또한, 두 복음서에서 각각 다른 화폐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탈렌트'는 '미나'(mina)의 화폐 단위보다 더 높다.
'탈렌트'는 6,000 데나리온의 가치이고, '미나'는 100데나리온의 가치이므로, '미나'는 '탈렌트'의 60분의 1정도이다.
여기서 귀족은 종들에게 그것을 주면서 '벌이를 하여라'고 말한다.
'벌이를 하여라'에 해당하는 '프라그마튜사스테'(pragmateusasthe; occupy; put the money to work)의 원형 '프라그마튜오마이'(pragmateuomai)는 '사업하다'라는 뜻으로서 상업적 거래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이다.
귀족은 한 미나를 종들에게 주며, 먼 고장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그때까지 이 돈을 활용해서 사업을 하여 이윤을 남기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장사, 사업이란 용어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 귀족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 암시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에 상당한 시간이 있을 것에 대한 암시로 이해한다.
마태오 복음의 '탈렌트의 비유'는 차등있게 탈렌트가 주어진 것을 통해 사람에 따라 소명과 은사의 차이가 있음을 나타낸 반면에, 루카 복음의 '미나의 비유'는 동일하게 한 미나씩을 줌으로써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든 백성들에게 동일한 기회를 주신 것을 나타낸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백성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그 재능과 시간을 잘 활용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이윤을 최대한도로 남기기를 원하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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