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11월 22일[(홍)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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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11-22 | 조회수1,254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11월 22일 금요일 [(홍)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체칠리아 성녀는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독실한 신앙인으로 자랐다. 성녀의 생존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260년 무렵에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며, 박해 시대 내내 성녀에 대한 공경이 널리 전파되었다고 한다. ‘체칠리아’라는 말은 ‘천상의 백합’이라는 뜻으로, 배교의 강요를 물리치고 동정으로 순교한 성녀의 삶을 그대로 보여 준다. 흔히 비올라나 풍금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체칠리아 성녀는 음악인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말씀의초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새로 만든 번제 제단 위에서 율법에 따라 희생 제물을 바치며, 제단을 다시 봉헌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시며, 그들이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고 하신다. ◎제1독서◎ <<그들은 제단 봉헌을 경축하였는데, 기쁜 마음으로 번제물을 바쳤다.> 말씀입니다. 4,36-37.52-59 “이제 우리 적을 무찔렀으니 봉헌합시다.” 하고 말하였다. 시온산으로 올라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율법에 따라 희생 제물을 바쳤다. 바로 그때 그날, 비파와 자바라를 연주하며 땅에 대고 엎드려, 주신 하늘을 찬양하였다. 제단 봉헌을 경축하였는데, 친교 제물과 감사 제물을 드렸다. 장식하고 대문을 새로 만들었으며, 58 백성은 크게 기뻐하였다. 치욕의 흔적이 사라졌다. 온 회중은 해마다 그때가 돌아오면, 동안 제단 봉헌 축일로 기쁘고 즐겁게 지내기로 결정하였다. ◎화답송◎ 1역대 29,10ㄴㄷ.11ㄱㄴㄷ. 11ㄹ-12ㄱ.12ㄴㄷㄹㅁ(◎ 13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영원에서 영원까지 찬미받으소서. ◎ 주님, 당신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영예와 위엄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 주님, 당신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당신은 온 세상의 으뜸, 그 위에 드높이 계시나이다. 부귀와 영광이 당신에게서 나오나이다. ◎ 주님, 당신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권능과 권세가 당신께 있으니, 당신 손을 통하여, 모든 이가 힘과 영예를 얻나이다. ◎ 주님, 당신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복음환호송◎ 요한 10,27 참조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복음입니다. 19,45-48 성전에 들어가시어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성체송◎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을 생명의 샘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오늘의묵상◎ 오늘 제1독서는 마카베오와 형제들이 독립 전쟁을 치른 뒤 이민족들에게 더렵혀진 성전을 정화하는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유다인들은 오늘날까지 이 사건을 기념하여 여드레 동안 성전 봉헌 축제 (‘하누카 축제’)를 지내는데, 성전을 깨끗이 정화하며 빛을 밝히는 성전 봉헌 축제는 신약 성경, 특히 요한 복음에서도 이따금 언급되는 축제입니다.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이 사건은 모든 복음서가 중요하게 다루는 사건으로(마르 11,15-19; 마태 21,12-13; 요한 2,14-16 참조), 예수님께서 바라신 것은 성전 자체를 정화하시거나 부수어 없애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정 고치고자 하신 것은, 사람들이 성전에서 하느님을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성전에서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지 못하는 이들을 향하여, 무엇이 참으로 올바른 예배인지를 보여 주시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행동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이 보여 주던 행동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예언자들은 늘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잘못된 예배 행태를 비판해 왔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말씀하신 두 구절, 곧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이사 56,7 참조)와 “너희는 이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예레 7,11 참조)는 말씀도 바로 이 점을 지적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성전에서 이루어졌던 예수님의 예언자적 비판은 그분을 죽음으로 내모는 중대한 원인이 됩니다.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환전과 제물 판매로 많은 수입을 얻고 있던 당시 대사제들과 사제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도를 찾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합니다. 온 백성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느라 그분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 곧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 바로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참된 성전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 성전에서 환전하고 물건을 사서 하느님께 봉헌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의 집인 성전, 곧 예수님이라는 성전 안에서 예수님을 제물로 봉헌하는 참된 제사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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