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11월 23일[(녹)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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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11-23 | 조회수1,27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11월 23일 토요일 [(녹)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말씀의 초대 안티오코스 임금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 때문에 자신에게 불행이 닥쳤음을 깨닫고, 큰 실망을 안고 죽어 간다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고 하신다. ◎제1독서◎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 때문에 나는 큰 실망을 안고 죽어 가네.> 말씀입니다. 6,1-13 내륙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엘리마이스라는 성읍이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무척 부유하였다. 필리포스의 아들로서 알렉산드로스가 남겨 놓은 갑옷과 무기도 있었다. 가서그곳을 점령하고 약탈하려 하였으나, 알려지는 바람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싸우니 오히려 그가 달아나게 되었다. 떠나 바빌론으로 향하였다. 페르시아로 안티오코스를 찾아와서, 유다 땅으로 갔던 군대가 패배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앞장서 나아갔던 리시아스가 도망치고, 유다인들이 아군을 무찌르고 빼앗은 무기와 병사와 많은 전리품으로 더욱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제단 위에 세웠던 역겨운 것을 부수어 버리고, 높은 성벽을 쌓았으며,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다. 깜짝 놀라 큰 충격을 받았다. 일이 되지 않아 실망한 나머지 때문에 오랫동안 누워 있다가 모두 불러 놓고 말하였다. 마음은 근심으로 무너져 내렸다네. 이런 생각을 했네. 역경에 빠졌단 말인가? 휘말렸단 말인가? 나도 쓸모 있고 사랑받는 사람이었는데 …….’ 불행이 이제 생각나네. 다 빼앗았을뿐더러, 없애 버리려고 군대를 보냈던 거야. 닥쳤음을 깨달았네. 이국땅에서 죽어 가네.” ◎화답송◎ 시편 9,2-3.4와 6.16과 19(◎ 15ㄷ 참조) 환호하오리다. 당신의 기적들을 낱낱이 전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 찬미하나이다. ◎ 주님, 당신의 구원에 환호하오리다. 당신 앞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져 갔나이다. 당신은 민족들을 꾸짖으시고 악인을 없애셨으며, 그 이름을 영영 지워 버리셨나이다. ◎ 주님, 당신의 구원에 환호하오리다. 파 놓은 함정에 빠지고, 자기네가 쳐 놓은 그물에 제 발이 걸리네. 가난한 이는 영원히 잊히지 않고, 가련한 이들의 희망은 영원토록 헛되지 않으리라. ◎ 주님, 당신의 구원에 환호하오리다. ◎복음환호송◎ 2티모 1,10 참조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복음◎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20,27-40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이르셨다.“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영성체송◎ 저는 하느님 곁에 있어 행복하옵니다. 주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으리이다. ◎오늘의묵상◎ 사두가이들은 천사의 존재와 육신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것도 부인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한 생명이나 부활이라는 주제에서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예수님과도 의견의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도 바로 그 내용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부활이 있다면 설명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며 이성적으로 질문합니다. 곧, 율법은 형제가 죽으면 그 후사를 이어 주려고 죽은 형제의 아내를 맞아들이라고 가르치는데, 만일 부활이 있다고 한다면 죽고 난 뒤 부활하였을 때 그 부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대답하십니다. 부활이란 지금 현재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이 육신의 조건을 그대로 가지고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변화된 육신으로 되살아나서 천사들과 같아지기에 더 이상 세상의 연에 매여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불교가 말하는 환생처럼 지금과 전혀 다른 존재로 되살아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현세에 매이지 않는 온전히 변화된 몸으로 부활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을 칭찬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바리사이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기에 예수님께 호의를 가집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예수님과 대립각을 세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조상의 전통보다 당신에 대한 믿음을 더 중시하시기 때문입니다. 곧,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은 모두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그분을 죽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완전히 다른 몸으로 부활하심으로써, 진정 부활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오늘 제1독서는 역사적으로 유다인들을 가장 괴롭힌 임금 가운데 하나인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의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맞은 불행한 죽음의 원인이 예루살렘에 대한 그의 죄 때문이었음을 안티오코스가 직접 입으로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크게 실망하고 죽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그도 과연 부활을 누릴 수 있을까요? 원수들의 구원 문제는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판단하실 문제인 듯합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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