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 보면 화려함과 정교함에 감탄하게 되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유럽 성당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나 “모자이크”, 태국 왕궁의 화려함,
대만의 국립 박물관에서는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정교함의 한계가 바로 이런게 아닐까!”
싶은 작품들도 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려함, 정교함에 감탄하게 되지만
조형적 완성도는 늘 그것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며
더구나 조형적 완성도라는 것이 늘 상대적으로 평가되는 것도 아니다.
하얀색 웨딩드레스가 검은색 정장 보다 더 “화려하다”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더 “아름답다”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두 옷은 서로 용도가 다를 뿐 아니라
모두 나름 데로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정교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한옥의 지붕선을 보면 가운데가 살짝 낮아 지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유럽성당들의 하늘로 높게 치솟은 고딕식 지붕이나
이슬람 사원의 꽃 봉오리 모양의 지붕처럼
한 눈에 “확”하고 들어오는 극적인 멋은 없지만
보면 볼수록 친근한 것이 아름답기로 치면 결코 뒤지지 않는다. - 전남, 운주사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이후로 근 이십 년 만에 다시 경주에 간 적이 있었다.
대학 때부터 꼭 다시 한번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는데 결국은 서른이 넘어서 가게 되었고
그때 나는 드디어 토암산 석굴암에 있는 불상에서 미소를 보았다,
교과서에서 “보일듯 말듯 신비하다”라고 말하던 그 미소다,
나만 그랬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미소 짓고 있다, 미소 짓고 있다….”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봐도 안 보였던 그 미소가
석굴암뿐만이 아니라 경주박물관에 있는 많은 불상들에서도 보였다.
보일 듯 말 듯 한 “신비한 미소”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만 있었던게 아니라
아주 옛날 우리나라의 이름 모를 석공이 새긴 “회색의 화강암 불상”에도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미”란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소박함”이라고들 많이 한다,
중고등학교 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을 머리가 아닌 느낌으로 깨닫기 위해서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보다도 먼저 소박함이 “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우리는 화려함과 정교함에 길들여져 왔는지도 모른다.
“미”를 제대로 느끼는데도 노력과 연륜이 필요하다.
하긴 이 세상에 노력과 연륜이 필요 없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고기도 많이 먹어본 사람이 그 맛을 안다”라고 하지 않던가?
하루 세끼 꼬박 꼬박 챙겨 먹는 음식도
그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노력과 연륜이 필요한데
어떤 사물을 보면서 “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노력과 연륜이 필요한게 당연한 이치 일 것이다.
하지만 꼭 이런 것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에 관심을 갖고 안 갖고는 각자 취향이고 선택일 따름이며
이런 것을 몰라도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 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우리 나라 것이 외국 것에 비해 더 우수하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것이기 때문에 꼭 알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물론 모르는 것보다야 낫다,
하지만 모르는 걸로 치자면 내가 모르는 “우리의 것”이 어디 한 두 가지 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바로 옆 가까이에 두고도
미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게 안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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