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1.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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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1-10 | 조회수1,622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2020년 1월 10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제1독서 1요한 5,5-13 사랑하는 여러분,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루카 5,12-16 12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어떤 청년에게서 들은 고민 한 가지가 생각납니다. 그 고민은 같은 성당에서 활동하는 친구 한 명이 너무나도 밉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친구를 미워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미운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친구가 자기의 예전 여자친구와 지금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전 여자친구와는 완전히 끝난 관계이지만, 자기 친구가 전 여자친구 만나는 것을 보면서 괜히 미움의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당 친구에게 옮겨간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마음에 미움이 가득할 때 어떻습니까? 그 어떤 사람도 예뻐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미워하는 사람과 친한 누군가가 있다면 친한 그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미움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세상을 기쁘게 살아갈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따라서 미움의 대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을 만드는 데 더욱더 집중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특히 나 자신을 위해서도 반드시 간직해야 하는 사랑의 마음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나병 환자를 고쳐 주십니다. 그런데 나병 환자의 몸에 직접 손을 대시지요. 이는 이스라엘의 정결 규정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말씀만으로도 이 나병을 고쳐 줄 수 있음을 다른 예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스캔들을 제공하는 행동을 하셨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형상화된 것이나, 마귀가 들린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나병 환자로 선고받은 사람은 자기가 사는 곳에서 내쫓겨 그 외곽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 의미는 유다인 사회에서 모든 것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다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병 환자는 사랑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역시 사랑을 받아야 할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직접 당신의 손을 대신 것입니다. 유다인들처럼 사랑하지 않을 이유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런 모습으로는 주님을 따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아니라, 사랑할 이유를 찾는 우리가 주님과 진정으로 함께 하는 모습이 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나는 살면서 단 하루도 일한 적이 없다. 모두 재미있는 놀이였을 뿐이다. (토마스 에디슨) (오늘 사제서품을 받는 인천교구의 새사제입니다. 기도해주세요) 정상? 비정상? 파도가 심한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은 약간 옆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합니다. 파도가 심할 때 똑바로 가게 된다면 배가 전복되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간 기울어져서 항해하게 됩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똑바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약간 기울어져서, 즉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많이 웃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웃는 것이 건강해지는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금 막 경험한 사람이 유쾌하게 큰 소리를 내어 웃고 있다면 어떨까요? 이때는 비정상적인 모습처럼 보이는 슬피 우는 것이 정상입니다. 힘들어할 필요가 없습니다. 똑바로 살지 못하는 것 같지만, 실상 가장 정상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다른 사람을 향할 때도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큰 힘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부제서품을 받는 인천교구의 새부제입니다.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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