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1월 17일[(백)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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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1-17 | 조회수864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1월 17일 금요일 [(백)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안토니오 성인은 3세기 중엽 이집트의 중부 지방 코마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느 날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마태 19,21)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감화되어, 자신의 많은 상속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사막에서 은수 생활을 하였다. 많은 사람이 안토니오를 따르자 그는 수도원을 세우고 세상의 그릇된 가치를 거슬러 극기와 희생의 삶을 이어 갔다. 성인은 ‘사막의 성인’, ‘수도 생활의 시조’로 불릴 만큼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4세기 중엽 사막에서 선종하였다. 말씀의초대 이스라엘의 원로들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을 통치할 임금을 세워 달라고 고집을 부린다(제1독서) 중풍 병자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하신다. ◎제1독서◎ <여러분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8,4-7.10-22ㄱ그 무렵 4 모든 이스라엘 원로들이 모여 라마로 사무엘을 찾아가 5 청하였다.“어르신께서는 이미 나이가 많으시고 따라 걷지 않고 있으니,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우 리에게 세워 주십시오.” 임금을 정해 주십시오.” 하는 그들의 말을 듣고, 말을 다 들어 주어라.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요구하는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모두 전하였다. 임금의 권한이오. 그는 여러분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와 말 다루는 일을 시키고, 삼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고 수확하게 할 것이며, 무기와 병거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오. 데려다가, 향 제조사와 요리사와 제빵 기술자로 삼을 것이오. 포도원과 올리브 밭을 빼앗아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 내시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오.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 그리고 여러분의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오. 십일조를 거두어 갈 것이며,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않으실 것이오.” 듣기를 마다하며 말하였다.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민족들처럼, 임금이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 앞에 나서서 전쟁을 이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서 그대로 주님께 아뢰었다. 임금을 세워 주어라.” 하고 이르셨다. ◎화답송◎ 시편 89(88),16-17.18-19 (◎ 2ㄱ 참조) 노래하오리다. 아는 백성! 주님, 그들은 당신 얼굴 그 빛 속을 걷나이다. 그들은 날마다 당신 이름으로 기뻐하고, 당신 정의로 힘차게 일어서나이다. ◎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당신 호의로 저희 뿔을 들어 올리시나이다. 저희 방패는 주님의 것, 저희 임금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것이옵니다. ◎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복음환호송◎ 루카 7,16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복음입니다. 2,1-12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소문이 퍼지자,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영성체송◎ 마태 19,21 참조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나를 따라라. ◎오늘의묵상◎ 죄의 용서는 하느님께 미루어 놓고, 자기들끼리 단죄하기 바빴던 바리사이의 모습을 보며 오늘 우리 사회의 갈등을 반성합니다. 가입 국가들 가운데 사회 통합 지수가 늘 꼴찌 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너무 인색한 사회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염려됩니다.중풍 병자를 고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예수님과 중풍 병자라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들것에 뉘어 데리고 와서 지붕까지 뚫고 예수님과 만나게 한 네 사람에게 주목하고자 합니다.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죄인으로 낙인 찍힌 중풍 병자와 함께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의 죄를 용서해 주셨고, 이를 치유의 사건으로 명확히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의 반목과 대립, 그리고 단죄와 갈등의 한가운데서 보여 주셨습니다.“목에 칼이 들어와도 난 용서 못 한다. 그 사람은 안 볼 거야.”와 같은 말들을 할 때가 있습니다. 터진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신앙인은 이를 이겨 내는 내적 힘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다른 이의 도움이 함께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견고해집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위대한 영웅의 초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아픔을 나누는 것,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하느님의 용서는 우리의 용서 안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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