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르 2,13-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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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20-01-18 | 조회수1,25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르 2,13-17) 13 예수님께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주님을 보기 위해 오는 무리들(군중)이 있었다. 언제, 어디에 계시든지 간에 예수님을 향해 많은 무리들이 몰려들었다. 예수님의 말씀이 권세가 있었고, 지금까지 듣던 어떤 것과도 달랐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기적들은 이전의 그 누구도 行할 수 없었던 것이었으며, 심지어는 기대할 수조차 없었던 기적들이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참 진리를 추구하여 전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 나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行하시는 기적을 보고 싶은 호기심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며, 병을 고쳐야하는 절박한 환경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예수님께 많은 군중이 모이자 예수님을 비방할 요소들을 찾기 위해 온 사람들 등등… 예수님께서 당시 갈릴레아 주변 사회에 話題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한 곳에 머무르시지 않으셨다. 구원할 죄인들이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 다시셨다. 오늘 본문에는 갈릴레아 호숫가를 두루 다니시면서 예수님을 찾아 나온 군중을 가르치신 장면에 이어서 알패오의 아들 세리 레위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많은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장면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도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며, 따라서 수용하기 힘든 복음이었지만, 예수님께서 행하신 파격적인 行步는 당시 유대인들의 사회적 관습이나 종교적 관념과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엄격한 율법을 중시하던 종교 지도자들이나 종교인들에게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행보였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예수님에 대해 비난할 수 있는 충분한 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로마의 통치아래서 세리라는 직업은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존재와 같이 여겨서 그들을 취급하기를 몸을 파는 사람들과 같은 죄인들로 취급하여, 상종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당시 사회적 풍습이었다. 그러니까 죄인들의 등급에서도 가장 비천하고 악한 그룹으로 분류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죄인들과 함께 앉아 얘기를 하며 식사를 나누신다. 예수님께서 이 행위가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어찌 모르셨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바리사인들을 비롯한 종교인들이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있지 않았다. 예수님은 天國, 즉 하느님의 나라에만 집중하셨고, 구원에만 집중하셨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왜곡되었던 하느님의 나라를 분명하게 바로 잡아야 하셨고, 천국의 백성이 되는 데에는 어떤 인간적이거나 사회적인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은 죄인들임을 알려 주심과 동시에, 모두가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할 때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전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분명한 사명을 이루시는 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셨던 것이다. 아무도 함께 하려 않는 죄인 그룹인 세리들과 함께 앉아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할 뿐 아니라,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혹시 오늘날 크리스챤들 중에도 이런 식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들은 없을까? 교회에 죄인들이 들어오면, 교회의 이미지나 자녀들 교육에 좋지 못하다고 하면서 그들을 교회에 보지 않기를 마음으로 원하고 있지는 않을까? 야고보서2장2-3절입니다. “2 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합시다. 3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 한다면,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친히 이런 죄인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의 주님이 되어주셨다. 오늘 나의 주님이 되신 것처럼. 바리사인들의 이 비방에 예수님은 유명한 말씀으로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 “17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 말씀을 다시 깊이 되새겨야 한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을 가서 돕기는 하여도, 그들이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는 없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가식일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닮아야 하며, 주님의 참 복음에 순종해야 한다. 그리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께서 행하신 대로 행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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