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1월 24일 금요일[(백)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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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1-24 | 조회수767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1월 24일 금요일 [(백)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1567년 이탈리아의 사보이아 지역에서 한 귀족 가문의 맏이로 태어났다. 1593년 사제가 되어 선교사로 활동한 그는 특히 칼뱅파의 많은 개신교 신자를 가톨릭으로 회두시켰다. 1599년 제네바의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어 1602년 교구장이 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기고 1622년에 선종하였다. 말씀의 초대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사울을 놓아주며 그에게 자신의 진심을 호소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신다. ◎제1독서◎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 24,3-21 가려 뽑은 삼천 명을 이끌고, ‘들염소 바위’ 쪽으로 갔다. 있는 곳에 이르렀다. 사울은 거기에 들어가서 뒤를 보았다. 그 굴속 깊숙한 곳에 앉아 있었다. 네 손에 넘겨줄 터이니,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겉옷 자락을 몰래 잘랐다. 자락을 자른 탓에 마음이 찔렸다. 부음받은이인 나의 주군에게 손을 대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부음받은이가 아니시냐?” 사울을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와 사울 뒤에다 대고,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다. 임금님을 해치려 합니다.’ 하고 눈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사람도 있었지만, 기름부음받은이니 대지 않겠다.’ 고 다짐하면서, 살려 드렸습니다. 여기 제 손에 아버님의 겉옷 자락이 있습니다. 임금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해치거나 배반할 뜻이 없다는 것을 제가 임금님께 죄짓지 않았는데도, 빼앗으려고 찾아다니십니다. 사이를 판가름하시어, 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해치지 않겠습니다. 는 옛사람들의 속담도 있으니, 해치지 않겠습니다. 누구 뒤를 쫓아 이렇게 나오셨단 말씀입니까? 임금님께서는 누구 뒤를 쫓아다니십니까? 아니면 벼룩 한 마리입니까?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셨으면 합니다. 살피시고 판결하시어, 건져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연들을 다 말하고 나자, 이게 정말 네 목소리냐?” 하면서 소리 높여 울었다.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너는 나를 좋게 대하였으니 말이다. 넘겨주셨는데도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 주었는지 오늘 보여 준 것이다. 놓고 무사히 제 갈 길로 돌려보내겠느냐? 네가 오늘 나에게 이런 일을 해 준 것을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 반드시 임금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에서 일어설 것이다.” ◎화답송◎ 시편 57(56),2.3-4.6과 11(◎ 2ㄱ) 하느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제 영혼이 당신께 숨나이다. 재앙이 지나갈 그때까지, 당신 날개 그늘로 피신하나이다. ◎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나를 위하시는 하느님께 부르짖네. 하늘에서 나에게 구원을 보내시어, 나를 짓밟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리라. 하느님은 자애와 진실을 보내시리라. ◎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 영광을 온 땅 위에 드러내소서. 당신의 자애 크시어 하늘에 이르고, 당신의 진실 크시어 구름에 닿나이다. ◎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환호송◎ 2코린 5,19 참조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네.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복음입니다. 3,13-19 산에 올라가시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영성체송◎ 요한 15,16 참조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오늘의묵상◎ ‘열둘’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유다 사회는 그 숫자를 ‘민족’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상징하는 것이 ‘열둘’이었고,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돌아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곧추세울 때 사용한 숫자가 ‘열둘’이었습니다. 하느님 백성을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파견하신다고 하여서, 요즘의 ‘경쟁 의식’을 염두에 둔 해석을 하여서는 안 됩니다. 열둘은 다른 이들과 달리 능력 있는 이들로 뭉친 특정 계급이 아니라, 모든 이가 예수님의 참제자가 될 수 있다는 무한한 초대의 자리로 이해해야 합니다. 어떠한 차별도 없이 예수님 곁에 머물며, 모든 이에게 파견되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열둘의 참된 의미입니다.오늘 우리 곁의 또 다른 열둘을 생각합니다. ‘열둘’의 범주 안에 함께하는지 되돌아봅니다. ‘열둘’이기 위하여 스스로를 가두어 놓는 일이 없는지, 나는 진정 자유로운지 되물어 봅니다. 사상과 삶의 방식을 지닌, 도무지 하나가 될 수 없는 이들로 짜여 있습니다. 다른 생각들이 부딪치고 갈라지고 있을 테지요. 그런 나를 진정 사랑하고 또한 그런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열둘’의 자리는 무한한 우주처럼 유연하고 여유로워야 합니다. 독선은 내려놓고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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