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1월 25일 토요일[(백) 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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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1-25 | 조회수776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1월 25일 토요일 [(백) 설] 오늘 전례 ▦ 오늘은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축복하시는 주님에 관하여 듣습니다. 올 한 해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한 축복을 내리고자 하십니다. 축복을 받는 올바른 태도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그 축복을 이웃과 나누려는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삶을 다짐하며 주님의 축복을 청합시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을 내리시고 은혜와 평화를 베푸시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며,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이다(제2독서). 사람의 아들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제1독서◎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화답송◎ 시편 90(89),2와 4.5-6.12- 13.14와 16(◎ 17ㄱ) 저희 위에 내리소서. 땅이며 누리가 생기기 전에, 영원에서 영원까지 당신은 하느님이시옵니다.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그들은 아침에 든 선잠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 같사옵니다. 아침에 돋아나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리나이다. ◎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언제까지리이까?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당신 하신 일을 당신 종들에게, 당신 영광을 그 자손들 위에 드러내소서. ◎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제2독서◎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복음환호송◎ 시편 145(144),2 세세 당신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복음입니다. 12,35-40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시중을 들 것이다.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영성체송◎ 히브 13,8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시다. ◎오늘의묵상◎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제 신앙의 처지를 점검하고 가꾸어 갔습니다. 초대 교회의 모습을 따라 사는 것이 참된 교회라고 천명하였습니다. 여러 표현 중에 ‘깨어 있음’은 독보적 가치를 지닙니다.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것은 무엇보다 제 삶의 본분을 다하는 일입니다. 종이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듯, 도둑이 언제 올지 모르는 위험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집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듯, 신앙은 특별한 목적을 가진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삶에 대한 온전한 투신과 삶의 본디 모습을 추구하는 일상의 열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끔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말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꿈꾸기보다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신앙인다운 일일지 모릅니다. 힘들고 아프지만 신앙인에게는 뜻깊고 보람 있게 여겨졌으니까요. 아픈 삶을 이겨 내고 나면 ‘장밋빛 미래’ 가 있다는 약속을 받아서도 아니고, 후손들에게 영웅적 삶을 자랑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힘겹게 사는 지금, 오늘이 마지막 시간이고 그 시간을 먼저 사신 ‘예수님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 하나로 초대 교회 신자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갔습니다. 울어 주는 형제, 자매들이 있었습니다. ‘깨어 있음’은 지금, 여기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 삶이 어떻든 서로 다독이며 ‘오늘’을 살자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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