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1월 26일 주일[(녹) 연중 제3주일 (해외 원조 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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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1-26 | 조회수76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1월 26일 주일 [(녹) 연중 제3주일 (해외 원조 주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선언하였다. (2019년 9월 30일). 하느님 백성이 성경을 더욱더 경건하고 친숙하게 대하고, 하느님 말씀의 거행과 성찰과 전파를 위하여 이날을 봉헌하며 장엄하게 지내기를 권고한다.또한 한국 교회는 해마다 1월 마지막 주일을 ‘해외 원조 주일’로 지내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03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 해외 원조 사업에 대한 올바른 홍보와 신자들의 의식 강화를 도모하고자 ‘해외 원조 주일’을 정하였다. 오늘 특별 헌금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지의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원조로 쓰인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3주일입니다. 이 겨울에 많은 사람이 가난과 추위와 고독으로 아파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십니다. 하늘 나라의 도래는 구원 약속의 성취를 뜻합니다. 우리가 주님 구원의 작은 도구가 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에게 빛을 전하는 노력을 하기로 다짐하며 미사에 참여합시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이며 암흑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칠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복음 선포는 말재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라고 밝힌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회개를 촉구하시며 하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하신다. ◎제1독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8,23ㄷ―9,3 납탈리 땅이 천대를 받았으나 지역이 영화롭게 되리이다.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나눌 때 즐거워하듯. 짊어진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와 치신 그날처럼 부수십니다. ◎화답송◎ 시편 27(26),1.4.13-14(◎ 1ㄱ)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 ◎제2독서◎ <모두 합심하여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말씀입니다. 1,10-13.17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가운데에 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저마다 “나는 바오로 편이다.”, “나는 케파 편이다.”, 하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말입니까? 바오로가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기라도 하였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바오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환호송◎ 마태 4,23 참조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네. ◎복음◎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셨다.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복음입니다. 4,12-23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바다로 가는 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영성체송◎ 시편 34(33),6 참조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오늘의묵상◎ 예수님 시대에 갈릴래아는 게으른 사람들이 모여 불법을 저지르는 곳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이 너무나 팍팍한 곳이었기에 남쪽 유다 사람들은 갈릴래아를 멸시하였습니다. 고상한 시간을 즐기는 것은 사치에 가까운 것이지요. 즐겁게 살고 싶지 않겠냐?’는 푸념이 갈릴래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를 선포하신 곳은 바로 갈릴래아였고, 공생활의 대부분도 갈릴래아에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가난한 곳이었고, 예수님께서 만나신 이들은 대개가 아프고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제자들도 그러하였습니다. 명예도 없는 그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역사를 써 내려가시기 시작하셨지요. 성공 사례로 예수님의 공생활을 언급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도시나 성공한 이들의 생활 방식에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예를 들어 세포리스와 같은 큰 도시에서 벌어지는 삶의 구체적 언급은 복음서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수님과 사회적 약자들의 만남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구원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의 부자와 성공한 사람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차별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유는 가진 자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이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고, 그 연민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사람답게 살기 바라시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지치지 말아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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