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1월 31일[(백)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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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1-31 | 조회수90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20년 1월 31일 금요일 [(백)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청소년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요한 보스코 성인의 말이다. 그는 1815년 이탈리아의 토리노 근교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양을 치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요한 보스코는 어머니의 엄격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라 사제가 되었다. 특히 청소년을 사랑했던 그는 젊은이들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오다가 1859년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그리스도교 생활을 익히게 하려고 살레시오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1872년에는 살레시오 수녀회도 세웠다.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19세기의 탁월한 교육자로 꼽히는 그는 1888년에 선종하였고, 1934년에 시성되었다. 말씀의초대 다윗은 전쟁터에서 우리야를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보내어 죽게 만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도 자라고 열매를 맺어 수확할 수 있게 된다고 하신다. ◎제1독서◎ <너는 나를 무시하고,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다. (2사무 12,10 참조)> 11,1-4ㄱㄷ.5-10ㄱ.13-17 온 이스라엘을 내보냈다. 라빠를 포위하였다. 그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일어나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옥상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누구인지 알아보았는데, 밧 세바로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가 아닙니까?” 하였다. 그 여인을 데려왔다. 그 뒤 여인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제가 임신하였습니다.” 하고 알렸다.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나에게 보내시오.” 하였다. 그래서 요압은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냈다. 7 우리야가 다윗에게 오자, 그는 요압의 안부를 묻고 이어 군사들의 안부와 전선의 상황도 물었다. 하고 분부하였다. 우리야가 왕궁에서 나오는데 임금의 선물이 그를 뒤따랐다. 모든 부하들과 어울려 왕궁 문간에서 자고,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하고 보고하자, 마셨는데, 다윗이 그를 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우리야는 밖으로 나가 제 주군의 부하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들려 보냈다. 심한 곳 정면에 배치했다가, 그가 칼에 맞아 죽게 하여라.” 포위하고 있다가, 자기가 보기에 강력한 적군이 있는 곳으로 우리야를 보냈다. 나와 요압과 싸웠다. 몇 명이 쓰러지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도 죽었다. ◎화답송◎ 시편 51(50),3-4.5-6ㄱㄴ. 6ㄷㄹ-7.10-11(◎ 3ㄱ 참조)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제 잘못이 언제나 제 앞에 있나이다.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 잘못을 저지르고, 당신 눈앞에서 악한 짓을 하였나이다. ◎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심판을 내리셔도 당신은 떳떳하시리이다. 보소서, 저는 죄 중에 태어났고, 허물 중에 제 어미가 저를 배었나이다. ◎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이 부수신 뼈들이 춤을 추리이다. 저의 허물에서 당신 얼굴을 돌리시고, 저의 모든 죄를 없애 주소서. ◎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복음환호송◎ 마태 11,25 참조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복음◎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복음입니다. 4,26-34 26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영성체송◎ 마태 24,46-47 참조 보실 때에 깨어 있는 종! 주님은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기시리라. ◎오늘의묵상◎ 마르코 복음의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 그분 자체를 말합니다. 참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라고 마르코 복음은 재촉합니다.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이방인인 백인대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메시아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우며 또한 멋스러워야 하고 힘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당시 유다 사회의 신앙이었습니다. 십자가, 그 십자가를 지신 분을 메시아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당위에 대한 저항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대개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오늘을 애쓰며 살아갑니다. 지금의 시간에 대하여 결핍 의식을 지닐 때가 가끔 있습니다. 내일의 희망찬 하느님 나라를 꿈꿉니다. 그러나 바로 이 자리,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실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는 이미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맞갖게 사는 것은 오늘 ‘이렇게 해야 돼!’라는 당위를 다시 한번 되짚어 물어보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억압하는 일은 없는지, 오늘 나에게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고통과 짐으로 여겨지는 일은 없는지 물어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 커져 갑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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