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2월 8일[(녹) 연중 제4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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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2-08 | 조회수982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2월 8일 토요일 [(녹) 연중 제4주간 토요일] 말씀의초대 주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주시고, 다른 축복도 약속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측은히 여기시며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다. ◎제1독서◎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3,4-13 4 제사를 드리러 기브온에 갔다. 천 마리씩 바치곤 하였다.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셨다. 다윗에게 큰 자애를 베푸셨습니다. 의롭고 올곧은 마음으로 걸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그에게 그토록 큰 자애를 내리시어,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제 아버지 다윗을 이어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만,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헤아릴 수도 없는 당신 백성 가운데에 있습니다. 듣는 마음을 주시어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보시기에 좋았다.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곧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마음을 준다. 너 같은 사람은 네 앞에도 없었고, 너 같은 사람은 네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곧 부와 명예도 너에게 준다. 너 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화답송◎ 시편 119(118), 9.10.11.12.13.14(◎ 12ㄴ)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깨끗이 가리이까? 오로지 당신 말씀 지키는 것이옵니다. ◎ 주님,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당신 계명 떠나 헤매지 않게 하소서. ◎ 주님,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마음 깊이 당신 말씀 간직하나이다. ◎ 주님,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 주님,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제 입술로 이야기하나이다. ◎ 주님,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당신 법의 길 걸으며 기뻐하나이다. ◎ 주님,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복음환호송◎ 요한 10,27 참조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복음◎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복음입니다. 6,30-34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영성체송◎ 시편 31(30),17-18 참조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오늘의묵상◎ 신학교에서 사제 양성의 소임을 맡으면서 개인적으로 중점을 두는 사항이 있습니다. 인성적으로나 영성적으로나 더 나아가 사목적으로도 훌륭한 사제가 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삼위일체 공동체 하느님이시며, 그분께서는 우리를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여시키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핵심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공동체성을 갖추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잘 보여 줍니다. 겨를조차 없을 정도로 몹시 피곤하였던 예수님과 제자들은 휴식이 절실하였습니다. 외딴곳으로 배를 타고 떠납니다. 달려가 예수님과 제자들보다도 먼저 그곳에 다다르자 예수님께서는 쉬는 것을 포기하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을 전해 주십니다. 양해를 먼저 구하실 수도 있었는데도 말입니다.바로 여기에서 예수님의 ‘공동체성’이 드러납니다. 있지 않고, ‘너’에게로 건너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가엾은 마음이 드셨기’ 때문입니다. 동사는 ‘배 속’, ‘내장’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 가엾은 마음이 든다는 것은, 상대의 아픔에 자신의 속이 뒤틀릴 정도의 감정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커다란 고통보다도 가시에 찔린 자기 손톱에 신경이 가는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를 넘어 상대의 아픔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 ‘나’에서 ‘너’에게로 건너갈 때 우리의 공동체성은 예수님의 그것과 같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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