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3.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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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3-04 | 조회수1,726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2020년 3월 4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 요나 3,1-10 주님의 말씀이 1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6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7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9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복음 루카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너무나 술을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걱정이 많은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젊었을 때야 술을 좋아해도 실수도 하지 않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술 마시고 하는 실수가 너무나 잦았던 것입니다. 말씀드렸더니, 남편을 위해 9일 기도를 바쳐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정성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9일 기도가 끝나는 날, 남편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확신을 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기도하면 술을 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9일 기도를 두 번이나 더 했지만, 남편은 술을 끊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님은 기도를 끊었습니다. 더는 자기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면서 말이지요. 판단하는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기준은 내 기준과 분명히 다른데도 말이지요. 이야기를 전해주십니다. 요나가 표징이 되었다는 니네베라는 도시는 아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25세기부터 기원전 612년까지 존재한 강성했던 국가입니다. 이 나라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켜 유배시키고, 남유다를 점령해서 조공을 바치게 했었지요.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시리아는 원수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요나에게 명령하셔서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하고 말 것 이라는 말을 전하라고 명령하지요. 해방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반대쪽으로 도망쳤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방인에게도 당신의 사랑을 베푸시기에 요나를 보냅니다. 이 니네베 사람들이 요나의 뜻과는 달리 모두 회개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멸망하지 않습니다. (물론 기원전 612년 메디아-바빌로니아 연합군으로부터 멸망합니다). 의미가 있는데, 믿는 이들에게는 그들의 구원을 의미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멸망을 뜻합니다. 이 요나의 표징이 주님께도 연결이 됩니다. 즉, 주님을 믿는 자는 구원받고, 믿지 않는 자들을 단죄받을 것입니다. 함부로 판단하고 단죄하려는 마음은 하느님의 사랑과 정반대의 모습을 취하게 됩니다. 그 사랑을 믿고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가 단죄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우리를 겁에 질리게 하고 경악케 하는 것은 외부의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들을 생각하는 방식에 있다. (에픽테토스) 자유로운 사람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남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행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어디에도 구속됨 없는 자유로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자유로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의 자유로움, 더 나아가 내 욕심과 이기심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행복해질 수 있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없는 상태입니다. 이때 누가 이 사람을 풀어줄 수 있을까요? 이 사람처럼 꽁꽁 묶여 있는 사람이 풀어줄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묶여 있지 않은 사람만이 상대방의 밧줄을 풀어줄 수 있습니다. 자유로움이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묶여 있는 자를 풀어줄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먼저 내가 풀어야지만 남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먼저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나의 표징을 묵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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