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3월 6일[(자) 사순 제1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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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3-06 | 조회수1,314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3월 6일 금요일 [(자)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말씀의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악인이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장과 정의를 실천하면 살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말씀입니다. 18,21-28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고 악인이 저지르는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하면, 살 수 있겠느냐? 기억되지 않은 채, 자기가 저지른 배신과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 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화답송◎ 시편 130(129),1-2.3-4.5와 6ㄴㄷ-7ㄱ.7ㄴㄷ-8(◎ 3)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주님,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주님,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 애원하는 제 소리에, 당신 귀를 기울이소서.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더 기다리네.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바로 그분이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복음환호송◎ 에제 18,31 참조 찬미받으소서.)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찬미받으소서.) ◎복음◎ <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여라.>> 복음입니다. 5,20ㄴ-26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 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영성체송◎ 에제 33,11 참조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나는 죄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죄인이 돌아서서 살기를 바란다. ◎오늘의묵상◎ 복음서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주로 예수님과 논쟁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여 율법을 따르고 지키던 이들이었습니다. 율법을 하나라도 어기지 않고 유다교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실천하며 살았던 이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실상 우리는 계명을 지키는 것도 힘겨워하며 살아갑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그들을 능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필요한 최소한의 규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법대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기준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법대로’ 살던 사람들이었고 그것이 그들 삶의 가장 큰 기준이었습니다. 넘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법대로’ 사는 것에 만족하고 떳떳해할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생각하고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리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해쳐서는 안 될뿐더러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도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과 입으로 많은 이들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예물로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웃과 화해해야 합니다.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용서를 청하고, 손해를 입힌 것이 있다면 갚는 것이 먼저입니다. 의미를 일깨워 줍니다. 그 의미를 먼저 생각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로움에 이르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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