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3월 14일[(자) 사순 제2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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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3-14 | 조회수996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3월 14일 토요일 [(자)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말씀의초대 하느님께서는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제1독서) 아버지는 모든것을 탕진하고 돌아온 작음 아들을 더없이 환대하며 잔치를 벌인다(복음) ◎제1독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말씀입니다. 7,14-15.18-20 숲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지팡이로 보살펴 주십시오. 그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나오실 때처럼 저희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여 주십시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야곱을 성실히 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 ◎화답송◎ 시편 103(102), 1-2.3-4.9-10.11-12(◎ 8ㄱ) 너그러우시네.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네.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당신을 경외하는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가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멀리 치우시네.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복음환호송◎ 루카 15,18 참조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나이다.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복음입니다. 15,1-3.11ㄴ-32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들이 둘 있었다.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아버지에게로 갔다.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나가 있었다.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소리를 들었다.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어기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영성체송◎ 루카 15,32 참조 다시 살아났다.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기뻐하여라. ◎오늘의묵상◎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주요 인물은 아버지와 두 아들 곧 큰아들과 작은아들입니다. 이 비유는 아버지의 자비를 강조합니다. 아버지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집을 떠난 작은아들을 기다리며, 또 큰아들의 불평을 들어 주고 그를 위로하는 사람입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잘 드러내고 하느님의 특징적인 모습을 요약해서 전하기에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습니다. 모습과 우리 자신을 비교해 봅니다. 죄를 짓고 하느님에게서 멀리 떠나 방종한 생활을 한 작은아들이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지기 때문입니다.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발길을 돌리는 모습은, 죄를 뉘우치고 돌아서서 하느님과 화해하는 회개의 의미를 잘 드러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돌아오는 이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른 모습입니다. 착실하게 아버지의 명을 따라 살았던 큰아들은 작은아들의 귀환을, 회개한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큰아들 또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공동체를 지키며 열심히 활동하지만 언제나 그 자체가 기쁨이 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오히려 무거운 짐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회개한 이를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자비가 큰아들에게는 불평과 불만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그는 아버지가 ‘늘 함께 있다.’라고 한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두 아들 가운데 어느 모습에 더 가깝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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