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믿음의 눈으로/개인적인 책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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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3-18 | 조회수1,15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개인적인 책임 하나의 문제점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부인(否認)'이라고 말하고 싶다.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실들이나 감정들, 심지어는 '무의식적인 재료'에 따라서 좌우된다는 이론을 세웠다. 있으나 그 원망을 인정하지 않은 경우 그 감정을 억누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내 생활에 들어오는 다른 여성에게 그 숨은 원한을 털어놓는다. 그 본래의 원한을 계속 숨겨 놓거나 그것을 부인하는 한 없는 사람에게 쏟아 놓고 있다는 것을 결코 깨닫지 못한다. 프로이트는 부인 속에 숨겨 둔 것들은 물 속에 어굴러 놓은 나무통들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한 짓눌러 놓은 현실들은 그것들을 영구히 숨겨 놓기로 결심 하지 않는 한 인정받기 위해 표면으로 떠오르려는 경향이 있다. 중요한 원인은 인생 초기의 계획표 짜기이다. 우리는 인생의 시작부터 남을 즐겁게 해주거나 다른 사람과 경쟁하도록 격려받는다. 우리는 질문만 가졌지 해답은 갖지 못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우리의 질문에 대답들을채워 넣기 시작했는데, 말하자면 '배후조종'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칭찬받는 대가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다른 사람들의 조건을 충족시켜 주었을 때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 대한 모든 행동과 반응에 개인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너는 나를 미치게 만드는구나… 그것이 나를 방해한다… 그녀는 나를 신경질나게 만든…." 와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이런 표어를 틀림없이 보았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당신이 허락해 주지 않는 한, 아무도 당신에게 어떤 것을 느낄 수는 없다." 다른 인간은 이미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에 자극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사물들의 원인이 될 수 없다. "나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가?" 이다. "비난이 끝나는 곳에서 성장이 시작한다." 이다. 하느님의 의사가 될 것을 약속했다. 있다고 말씀하셨다. 옛날에 나약한 제자들에게 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샬롬(평화가 있기를!)" 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삶이 충만하도록 우리를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한다. 예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사람들과 인간의 자유를 논했을 때 하려고 하신 말씀이었다고 생각한다 (요한 8장 참조). 자비를 이해할 때까지는 자유로워 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항의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의 독재자는 그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들이 지니고 다니는 죄, 열등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다. "나를 믿어라." 하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도전하신다. 진리는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이 현실로부터 격리시킨다. 반응과 응답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대신해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믿을 수 있다. 우리는 주님께 손을 뻗치고 우리의 나약함의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결정만이 나약함의 인간 조건 속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 -성바오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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