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4월 4일[(자) 사순 제5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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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4-04 | 조회수1,09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4월 4일 토요일 [(자) 사순 제5주간 토요일] 말씀의초대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평화의 계약을 맺으시어 영원한 계약이 되게 하실것이다(제1독서) 카야파의 말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자녀들을 모으시려고 돌아가신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복음) ◎제1독서◎ <그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겠다.> 말씀입니다. 37,21ㄴ-28 떠나가 사는 민족들 사이에서 그들을 데려오고, 그들을 사방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고, 임금이 되게 하겠다.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기들의 우상들과 혐오스러운 것들과 온갖 죄악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구원하여 정결하게 해 주고 나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다스리는 임금으로서, 목자가 될 것이다. 내 규정들을 준수하여 지키면서,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영원히 그곳에서 살며, 그들의 제후가 될 것이다. 계약을 맺으리니, 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영원히 있게 되면, 그제야 민족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화답송◎ 예레 31,10.11-12ㄱㄴ.13 (◎ 10ㄹ 참조)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먼 바닷가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이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지켜 주시리라.” ◎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 강한 자의 손에서 구원하셨네.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산에 올라와, 주님의 선물을 받고 웃으리라. ◎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 젊은이도 노인도 함께 즐기리라. 나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위로하리라. 그들의 근심을 거두고 즐거움을 주리라. ◎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 ◎복음환호송 에제 18,31 참조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복음입니다. 11,45-56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 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영성체송◎ 요한 11,52 참조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그리스도 죽음에 넘겨지셨네. ◎오늘의묵상◎ 성주간을 앞두고 주님 수난에 함께할 준비의 필요성을 오늘 독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을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 모두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 그리하여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한 에제키엘 예언자의 환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든 백성을 위하여 다윗을 유일한 목자와 제후로 세우시겠다고 하신 예언과 함께 이 재통일된 왕국의 평화로움이라는 영원한 계약으로 이어집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성전과 거처를 그 백성 가운데 두시어 그제야 그들이 주님을 알아보게 된다는 희망을 안겨 줍니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의회를 소집하여 다음과 같이 논의합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재물을 잃을까 두려워 예수님과 하나 됨을 거부합니다. 특히 카야파 대사제는 기회주의적 발언으로 예수님의 죽음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말썽을 일으키는 자를 제거하려 합니다. 한 사람이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음으로써 민족에게 이익을 가져온다고 말입니다. 예언이 대사제와 최고 의회가 원하지 않는 하나 됨 곧 예수 그리스도와의 하나 됨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목자와 제후로서 민족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의 죽음은 널리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또한 하나로 모으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성주간을 준비하며 다음과 같이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카야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가, 아니면 예수님과 하나 됨을 진정으로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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