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4.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06 조회수2,34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0년 4월 6일

성주간 월요일

제1독서 이사 42,1-7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땅과 거기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을

펴신 분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목숨을,

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숨을

넣어 주신 분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복음 요한 12,1-11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신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매일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미사가 마치

치러야 하는 일처럼 느껴지게 되었고,

 졸다 깨기를 반복하는 등 성의 없는

미사 봉헌이 이루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미사의 은총을 잘 느끼지 못한 채,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군대에 들어가자마자 매일 했던

미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새로운

분위기에서 새로운 삶으로 제 모습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수해복구 작업으로 인해 주일미사에

세 번 연속 빠지게 된 것입니다

(아마 코로나 19로 인해 요즘 미사를

하지 못하니 여러분들도 그 기분을

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세 번 연속 빠지고 나서,

4주째에 참석하게 된 주일미사는

 제게 큰 감격을 주었습니다.

성체에 대한 굶주림이 얼마나

큰 것인지도 깨달을 수 있었지요.

이제까지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까지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은총이고 축복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완벽하게 살았다고 상을

받으러 미사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과

약을 받으러 갑니다.”
미사가 길고 짧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강론이 재미있고

재미없고 역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내게 필요한 양식과 약을

받아 모실 수 있느냐만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는 마리아와 이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유다가 나옵니다.

유다는 신심을 가장하며,

자신이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때

그분 목숨에 매긴 값보다 향유를

 더 값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는 은돈 30닢에 예수님을 넘깁니다.

구약시대 때부터 은은 세켈이라는

단위로 사용했습니다. 1세켈이

은 10g으로 4일 품값인 4데나리온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은 30닢은

40세켈로 현재의 화폐단위로 계산하면

 1,200만 원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향유는 3백 데나리온.

바로 3억 이상의 가치입니다.
마리아는 3억 이상의 향유를

붓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주님을 귀하게 여겼고,

 유다는 1,200만 원에 기꺼이

예수님을 배반했던 것입니다.
유다는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섬기는 일을

제쳐 놓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즉, 예수님이 먼저입니다.
주님을 통해서 우리는 분명히

 필요한 양식과 약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보다 다른 것이

늘 먼저는 아니었을까요?

세상 것을 더 값진 것으로 여기면서,

주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과

같은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참된 삶은

자기 자신을 대면하는 것,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

우리 안에 있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나의 악보와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악보를 해독해야 하고

거기에 가사를 붙어야 합니다.

(엠마누엘 수녀)

유치해!!!

어렸을 때 책상에 줄을 그어 놓고

“넘어오면 알아서 해!!”하며

 싸우곤 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이 줄을 넘으면 내게 커다란

 손해가 있는 것처럼, 불합리하다며

실제로 싸우기도 했습니다.
이 모습이 어떻게 보입니까?

정의롭고 합리적으로 보입니까?

 아니지요. 너무나 유치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경계를 벗어던지지 못합니다.
제가 있는 강화에서 북한까지의

거리는 아주 가깝습니다.

강화 읍내에 있는 북문에 올라가도

북한이 환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가까운 곳을 갈 수가 없습니다.

경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남과 북을 갈라놓은 경계로 인해 인간은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 없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를 봅니다.

인간들이 만든 이 경계선을 지킬까요?

그 어떤 새도 이 경계선을 지키지 않습니다.

무심히 넘나들 뿐입니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요?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

 왜 경계를 만들어서 불편하게

살지? 정말로 유치해!!!’
불편함을 알면서도 이 경계를

풀지 못합니다. 이 경계로 아픔이

생기고 발전을 더디게 해도,

다르면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경계를 더욱 굳건히 합니다.
새보다 못한 유치한 인간이 아닐까요?

(모레토의 바리사이 시몬 집에서의 저녁식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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