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통 없이는 생명을 낳을 수 없다> (요한 3,16-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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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20-04-22 | 조회수1,616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4월 22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고통 없이는 생명을 낳을 수 없다> (요한 3,16-21) 여자가 고통이라는 시련을 통과해야만 아이(생명-기쁨)을 낳는다는 것, 다 아시쟌아요?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너무나- ‘이토록’입니다. (주해서) 앞절~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 죽을 죄인들에게 하늘의 영생을 주시기 위해 그들의 죄값인 속죄 제물로 저주의 뱀이되어 십자가 기둥에 달리게 하신, 그토록 사랑하신 하느님 사랑입니다. 그래서~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말씀을 사람의 관점, 도덕과 윤리로 보면 심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으로 보면 덮으심 그 용서입니다. 18ㄱ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 예수님께서 대신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18ㄴ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예수님의 대속으로 용서받아 의인이 되어 구원받는 것입니다.(로마3,24참조)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그 대속의 십자가의 ‘길이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하신 것입니다.(요한14,6) 그러니 그 진리의 말씀을 믿지 않은 그 자체가 이미 죄인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 빛이 세상에 왜 왔어요? 하늘의 구원의 의로움을 주시기 위해서요. 그러나 사람들은 하늘의 의로움보다 땅의 의로움을 더 믿고 의지합니다. 그것이 하늘의 의로움을 흉내 내는 교만의 악한 일입니다. 선이 악을 덮어 생명, 곧 구원을 주는 그 하느님의 의로움보다 사람이 하느님처럼 선악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구원의 의로움을 이루겠다는 것, 교만, 악입니다. 사람의 의로움은 구원의 힘,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의로움으로 죄의 용서, 구원을 이룰 수 있다면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죽음이 헛된 것이 됩니다. 그것이 곧 하느님을, 예수님을 죽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카인이 형제 아벨을 죽였듯이 말입니다. 의인으로 착하게 살았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듯 말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피조물로 그분의 죄를 덮으시기 위한 그 사랑을 의지하여 그 하늘의 의로움으로만 구원,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바 2,2-3) 2 쓸려 가는 검불처럼 너희가 내쫓기기 전에 주님의 타오르는 분노가 너희에게 닥치기 전에 주님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닥치기 전에 3 주님을 찾아라,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 의로움을 찾아라. 겸손함을 찾아라. 그러면 주님의 분노의 날에 너희가 화를 피할 수 있으리라. = 하늘의 의로움, 겸손을 찾아야 합니다. 땅의 의로움, 겸손으로는 화(禍)를 피할 수 없습니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 선이 악을 덮어 생명을 주시는 그 하늘의 진리를 아는 이는 당연히 자신의 惡이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선의 덮으심, 그 예수님의 대속으로 자신의 악이 용서받아 구원에 이르게 됨을 믿으니까요.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의로움이 구원의 가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의로움, 그 복음을 말하면 듣기 싫어하고 그 사람까지 미워합니다. 그래서 제사와 윤리로 흠 없이 살았던 사울이, 복음을 전하는 스테파노를 죽이는데 협조했던 것입니다. 그 땅의 의로움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어 죽을 수밖에 없던 사도 바오로를 살리시기 위해 그를 엎어트리신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그 자신의 의로움, 그 가치를 엎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야고1,2-5) 2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3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4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5 여러분 가운데에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 고통 없이는 생명을 낳을 수 없습니다. 여자가 아이(생명)를 낳기 위해서는 고통이라는 시련을 통과 해야만 합니다. 그 시련을 통과하면 기쁨이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 그 산고(産苦)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듯이 말입니다. (히브12,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12장 전체를 보면 더 힘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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