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5월 3일[(백)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생명 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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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5-03 | 조회수1,61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5월 3일 주일 [(백)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생명 주일)]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2,14ㄱ.36-41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다.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삼천 명가량 늘었다. ◎화답송◎ 시편 23(22),1-3ㄱ. 3ㄴㄷ-4.5.6(◎ 1) 아쉬울 것 없어라.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제2독서◎ <여러분은 영혼의 목자이신 그리스도께 돌아왔습니다.> 2,20ㄴ-25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받는 은총입니다.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않았고 그의 입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었다.”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복음환호송◎ 요한 10,14 참조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복음◎ <나는 양들의 문이다.> 복음입니다. 10,1-10 너희에게 말한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이는 양들의 목자다.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말을 듣지 않았다.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영성체송◎ 착한 목자, 당신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네. 당신 양 떼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오늘의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문’에 빗대어 드러내십니다. 그리스 말에 ‘문’은, 안팎을 구분하는 개념의 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드나드는 ‘통교의 자리’를 가리킵니다. 통교하는 문은 안팎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을 선사합니다. 그 자유 안에서 예수님과 신앙인은 서로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서로를 닮아 가며, 서로를 통하여 생명을 공유합니다. 됩니다. 길을 걷다 보면 목적지에 다다르고 그 목적지에서 목자와 양들은 서로 만나 풀밭의 행복을 누립니다. 그러나 길을 벗어나 걷게 되면 힘들고 불편해서 목적지에 다다르기는커녕 자기 존재마저 부정하기에 이릅니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나는 무엇을 해도 안 돼!’ …….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를 탓하며 세상살이마저 내려놓을까 고민하기에 이릅니다. 고민의 끝은 결국 자신 안에 갇혀 버리는 외톨이의 삶입니다.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제대로 된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만든 ‘길’이 아니라 통교와 소통, 그리고 서로를 살찌우는 생명으로 열린 길이어야 합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다름을 같음으로 만들려고 떼쓰듯 덤벼드는 완고한 투정을 내려놓고,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일이 예수님을 찾는 일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앙한다는 것을 자기 삶의 만족이나 욕망의 충족으로 폄훼하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용인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신앙은 서로의 목소리를 애써 꼼꼼히 듣는 이들의 여유 안에 풍성한 생명으로 거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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