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5월 4일[(백) 부활 제4주간 월요일] | |||
---|---|---|---|---|
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5-04 | 조회수1,36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5월 4일 월요일 [(백)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지방에 있는 형제들이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잡아먹어라.’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화답송◎ 시편 42(41),2-3; 43(42), 3.4(◎ 42〔41〕,3ㄱㄴ 참조)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당신의 거룩한 산, 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 ◎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나아가오리다. 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비파 타며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복음환호송◎ 요한 10,14 참조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복음◎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복음입니다. 10,11-18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목숨을 다시 얻는다.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받은 명령이다.” ◎영성체송◎ 요한 20,19 참조 가운데 서서 말씀하셨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알렐루야. ◎오늘의묵상◎ “나는 착한 목자다.” 하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착함’을 묵상해 봅니다. 착함은 다른 이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는 일이고, 착함은 서로를 아는 것입니다. 목숨을 내어놓는 일과 서로를 아는 일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가 됩니다. 다른 것에 대한 정보의 수집이나 지식의 축적으로 이해합니다. “나는 그 사람 알아.”라고 말할 때, 그 사람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는 것은 아닐까 되물어 봅니다. 요한 복음에서 말하는 ‘앎’은 그 대상에 대한 전적인 의탁이고, 우리는 그러한 의탁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요한 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예수님 안에 모두가 하나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의탁할 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할 때,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생명을 얻어 누립니다. 평온함을 위한 거짓 믿음이 널리 퍼져 있는 오늘날, 나는 무엇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자주 반문해 보면 좋을 듯합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죄를 짓고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손을 내밀어 다시 한번 제대로 살아 보자시는 하느님, 그리고 그러한 하느님을 함께 믿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 …….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착한 삶’입니다. 저 혼자 올바르고, 저 혼자 똑똑한 삶은 모든 이를 당신의 우리 안에 불러오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뜻과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착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명령이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계명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