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양과 목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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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0-05-04 | 조회수1,58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오늘 복음은 목자에 대한 설명입니다. 목자는 착한 목자가 있고 삯꾼이 있다고 나옵니다. 착한 목자와 삯꾼을 구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가 있지만 저는 한마디로 양들에게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목자들이 예수님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처럼 목숨을 내놓는 것까지를 참목자로 바라보는 시각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시대에 따라 복음을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야 될 겁니다. 관심은 바로 사랑입니다. 한평생 사랑이란 명목으로 목자의 삶을 살면 착한 목자로 살게 되는 것일 테고, 그렇지 않고 그냥 직분에 따라 의무감으로 양 떼를 보살핀다면 그는 착한 목자라고 할 수가 없을 겁니다. 사실 오늘 복음 전체를 보면 한 줄 한 줄에 따라 묵상할 게 많지만 한두 가지만 초점을 맞추어서 하면 예수님께서 착한 목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우리 안에 있지 않은 양들을 데리고 와야 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들이 우리 안에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예수님의 품안에 들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가 결국에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양 떼를 예수님의 우리 안으로 품기 위해 목숨을 내놓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함이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게 다시 목숨을 얻는 길이라고도 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이런 걸 묵상해봅니다. 하느님을 사랑해 목숨을 바칠 정도로 뭔가를 바치면 그에 상응하는 것을 되돌려 받는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뭔가를 되돌려 받기 위해 하느님께 봉헌하는 의미라기보다는 이런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위해 자신이 봉헌한 것은 절대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느님은 그런 걸 모두 다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기억을 하실까 하지 않으실까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인식하는 믿음을 가지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걸 생각한다면 하느님과 뭔가 거래를 하는 느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거래라는 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건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도 만년 양만 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은 양이지만 예수님처럼 우리에 들지 않는 양을 예수님의 우리로 인도하는 작은 목자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시는 지극한 예수님의 사랑처럼 그런 사랑을 실천하면 우리 또한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참다운 목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걸 원하시고 또 바라실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참다운 목자가 되는 길이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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