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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둠은 하루라도 빨리 나와야 이익일 겁니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06 조회수1,468 추천수1 반대(0) 신고

 

빛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경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빛이 싫어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어둠을 좋하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서도 떳떳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경우에는 그 일을 양지로 가지고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경우 대개 다 음지로 숨어서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빛으로 예수님께서 오셨음에도 왜 예수님의 빛을 사람들은 보지를 못하는 것일까를 생각해봤습니다.

 

그 빛 때문에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때 치부가 드러나면 그걸 숨기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끄럽지만 드러난 치부에 대해 반성과 수치심을 가지며 자신의 치부를 개선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그 빛으로 나아가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누구나 빛을 좋아하지만 어쩔 수 없이 어둠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둠이 좋아서만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가기는 싫지만 차마 빛으로 나갈 수가 없을 때입니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려면 여러 가지 어색한 면도 있을 겁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보이시려고 빛으로 오신 게 아닐 겁니다. 어둠으로 가득찬 세상에 빛이 있어야 어둠이 물러나갈 수가 있기 때문에 빛을 비추실 겁니다. 그 빛은 우리를 살리는 빛일 겁니다.

 

우리는 그 빛을 봐야만이 생명의 빛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 빛 속에 생명의 에너지가 있습니다. 태양의 햇빛을 받지 않으면 잎이 광합성을 할 수가 없어 살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빛을 봐야 합니다.

 

하느님의 빛을 보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빛은 달리 말하면 구원의 빛입니다. 심판의 빛이 아닙니다. 하지만 심판의 빛이 되기도 할 겁니다. 그건 하느님의 의도와는 무관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있지 않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셨는데 그 구원의 손길을 외면한 사람은 구원의 길을 자신이 거부한 거와 같은 것입니다. 결국 스스로 그걸 자초한 것입니다.

 

화요일 복음을 묵상하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생각의 관점을 한번 다르게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어둠 속에서만 있을 수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나중에는 어둠 속에 있는 생활도 지긋지긋한 생활처럼 느껴질 날이 있을 겁니다.

 

그 일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차피 그럴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나오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사람은 하루에도 빛 속에 살다가도 어둠에 사는 그런 존재입니다. 어둠 속에 있으면 그 기간만큼 빛 속에 사는 데에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현명한 판단을 가진 사람이라면 늦으면 늦을수록 자기에게 불이익만 더 가져오는 것이 되는 결과가 생기게 됩니다. 따라서 회개도 하려면 가급적 빨리 하면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도 한번 해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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