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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5.1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14 조회수1,85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0년 5월 14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제1독서 사도 1,15-17.20-26

15 그 무렵 베드로가 형제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그 자리에는 백스무 명가량

되는 무리가 모여 있었다.
16 “형제 여러분, 예수님을

붙잡은 자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해서는,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언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17 유다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우리와 함께

이 직무를 받았습니다.
20 사실 시편에 ‘그의

처소가 황폐해지고

그 안에 사는 자 없게 하소서.’

또 ‘그의 직책을 다른 이가

넘겨받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1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22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3 그래서 그들은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앞에 세우고,

 24 이렇게 기도하였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

 25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린 이 직무,

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 주십시오.”
26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마티아가 뽑혀,

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복음 요한 15,9-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지방으로 강의를 하러 갈 때

체험했던 일입니다. KTX 고속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중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있었는데, 옆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노트북을 켜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쉬지 않고 작업을 하면서도

휴대전화로 계속 통화를 합니다.

여기까지는 ‘열심히 사시는 분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런데 잠시 뒤 어떤 분과의 통화에서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주위의

 사람들이 ‘무슨 일이야?’ 하면서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형제님께서 “조용히 좀 합시다.”

라면서 항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항의에 더 화가 났나 봅니다.

결국, 이 두 분의 심한 말싸움으로

 이어지게 되었지요.
전화 통화로 화가 났던 형제님께서는

 스트레스를 크게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항의하는 형제님 때문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차 안에 타고 있었던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의 스트레스도

상당했습니다. 본인은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화를 냈겠지만, 다른 사람

역시 똑같이 화가 났습니다.
감정은 이렇게 전달이 됩니다.

따라서 지금 어떤 감정이 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억울해

할 것이 아니라, 어떤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있느냐를

먼저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계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의 자애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즉,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실제로 지키는 것이 됩니다.
이 사랑을 실천하면 그만큼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이 되기 때문에 행복의 길에

더욱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친구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고

 원수는 따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지요.

우리는 단지 종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의

친구이자 자녀가 되도록 불렸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따름으로써

우리가 몸담은 이 세상 자체가 하느님

안에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랑하라는 명령을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에만

머물면서 사랑의 길과는 정반대의 길로

걸어갑니다. 이는 자신만 정반대의

길로 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나쁜 감정을 전달시켜서 다른 이도

같이 정반대의 길로 가도록 만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친구가 된 것은 그분의 은총 덕분입니다.

이 은총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당연히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인생은 어느덧 지나간다.

그러니까 견딜만하다.

(A.체이스)

인간관계를 위해......

어느 신부의 사제관에 갔는데

단소가 눈에 보였습니다.

호기심에 단소를 들어서

불어보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날 뿐

어떤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그 신부가 말합니다.
“소리 나는 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해.”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악기를 완벽하게 알고 많은 시간을

연습해야 훌륭한 연주가 가능합니다.

만약 알려고도 하지 않고

또 연습도 하지 않으면,

악기의 겉을 만지작거릴 수는

있어도 똑바로 연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냥 하나의 장식품에

불과하게 되겠지요.
인간관계도 그렇지 않을까요?

상대방과 가까워지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나만 이해해 주길

바라는 것은 커다란 착각입니다.

단지 상대방의 겉만 볼 뿐 그 사람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좋은 인간관계가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악기를 연주하기 위한 노력을

떠올리며 사람과의 만남에도

정성을 쏟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그 안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 마티아 사도 축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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