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6월 1일 월요일[(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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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6-01 | 조회수1,679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6월 1일 월요일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전례문은 2018년 12월 10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추인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에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월요일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로 제정하였다.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은 교부 시대 때부터 쓰였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에서 마리아에게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을 부여하였다. 마리아는 성령 강림 이후 교회를 어머니로서 돌보았고, 여기서 마리아의 영적 모성이 드러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조하였다. 제1독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 주 하느님께서 그를 9 부르시며, 10 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누가 일러 주더냐?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화답송 시편 87(86),1-2.3과 5.6-7(◎ 3) 너를 두고 영광을 이야기하는구나. 주님이 야곱의 어느 거처보다, 시온의 성문들을 사랑하시네. ◎ 하느님의 도성아, 너를 두고 영광을 이야기하는구나. 너를 두고 영광을 이야기하는구나.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여기서 태어났으며, 지극히 높으신 분이 몸소 이를 굳게 세우셨다.” ◎ 하느님의 도성아, 너를 두고 영광을 이야기하는구나. “이자는 거기에서 태어났다.” 노래하는 이도 춤추는 이도 말하는구나. “나의 샘은 모두 네 안에 있네.” ◎ 하느님의 도성아, 너를 두고 영광을 이야기하는구나.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복되신 교회의 어머니,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를 길러 주시네. 복음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복음입니다. 19,25-34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 자기 집에 모셨다.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목마르다.”하고 말씀하셨다.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영성체송 요한 2,1.11 참조 카나의 혼인 잔치에 계셨네. 예수님이 처음으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 영광을 드러내시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아드님을 두고 성모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비통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드님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담아 그 곁에 ‘서 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성모님의 믿음이 얼마나 크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겠다던 베드로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형수가 되신 마당에 그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이라도 되면 큰일 날 것이라고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로마 군사들의 무자비한 폭력과 위협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밑에’(under)라는 말과 ‘서 있다’(stand)가 합쳐진 것입니다. 곧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 밑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밑에 묵묵히 서 계신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선악과 나무에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 먹음으로써 온 인류의 죽음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시어 골고타 언덕 한가운데에 있는 십자가 곁에 끝까지 서 계심으로써 우리에게 생명의 열매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예수님의 어머니에서 나아가 새 인류의 어머니, 새로운 하와가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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