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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미사 강론]성령강림대축일 미사 강론[2020. 5. 31. 주일[성령 강림 대축일 (청소년 주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05 조회수2,014 추천수0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0.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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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20531일 주일[성령 강림 대축일 (청소년 주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사도행전 2,1-11

화답송 : 시편 104(103),1ㄱㄴ과 24ㄱㄷ.29ㄴㄷ-30.31 34(◎ 30 참조)

2독서 : 코린토 112,3-7.12-13

복음 : 요한 복음 20,19-23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1729&gomonth=2020-05-31&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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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대축일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령강림대축일

성 베드로 대성전

2020 5 31일 주일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 신자들에게 쓴 대로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고린토 1 12,4).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씁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고린토 1 5-6). 다양함과 일치. 성 바오로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말을 조합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령께서는 많은 것을 가져다 주시는 한 분이시라고 그리고 교회는 이렇게 태어났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같은 성령님으로 일치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근원인 오순절의 그날로 돌아갑시다. 사도들을 바라봅시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어부이고 자신의 두 손으로 하는 일로 사는데 익숙한 소박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또한 마태오와 같이 교육받은 세리인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배경과 사회적인 맥락들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히브리인 또는 그리스인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성격 면에서 어떤 사람들은 온유했고 다른 사람들은 흥분을 잘하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른 생각들과 감성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한 세트의 미리 포장된 모델들로 바꾸어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다른 점들을 그대로 두셨고 그리고 이제 그분께서 성령으로 그들을 기름 부으심으로 그들을 하나로 만드십니다. 기름 부으심과 함께 그들의 일치가 옵니다 여러 가지 안의 일치. 오순절에 사도들은 성령님 일치의 힘을 깨닫습니다. 다른 언어들로 말하는데도 모든 이들이 한 민족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그들은 그들 자신의 눈으로 그것을 봅니다. 성령으로 만들어진 하느님의 민족은 다양성으로부터 일치를 빚어내고 화합을 이룹니다. 왜냐하면 성령 안에 화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당신 자신이 화합이십니다.

 

이제 우리 자신, 오늘의 교회에 초점을 맞춥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일치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일치의 근거는 무엇일까?” 우리에게도 우리의 다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서 의견과 선택과 감성의 다름들. 그러나 유혹은 언제나 지독하게 우리의 생각을 방어하려고 합니다. 그것들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좋다고 믿으면서 그리고 오로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만 동의하면서. 이것이 분열을 가져 오는 악한 유혹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자신의 이미지 안에 생겨나 있는 신앙입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를 일치시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나 우리의 도덕성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이 있습니다. 우리 일치의 원칙은 성령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고 이 점에서 모두 평등하고 그리고 모두 다르다는 것을 그 무엇보다 먼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의 다름과 어려움들 안에서 우리에게는 한 분이신 주님 예수님  그리고 한 분이신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고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는 형제 자매들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고 오십니다! 여기에서 새롭게 시작합시다. 세상이 보는 대로가 아니라 성령님의 눈으로 교회를 바라봅시다. 세상은 하나의 이념이나 또 다른 이념으로 우리를 오로지 우익이나 좌익으로 바라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을 성부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로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 자매로 바라보십니다. 세상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를 봅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보십니다. 세상의 눈길은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지는 구조를 봅니다. 성령께서는 자비를 간구하는 형제 자매들을 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만물의 위대한 계획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자리를 알고 계십니다. 그분께 우리는 바람에 날려 오는 색종이 조각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분의 모자이크 안에 있는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소중한 조각들입니다.

 

우리가 오순절의 그날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교회의 첫 번째 임무가 선포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사도들이 아무 전략도 짜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그곳, 위층 방에 갇혀 있었고 그들은 계획을 짜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그들은 어떤 사목 계획 초안도 짜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그들의 근원에 따라서 무리들로 나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말하고 그러고 나서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질서 있는 방식으로그들은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그들의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기다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둥지를 틀기쉬운 위층 방에 갇혀 있는 작은 집단 안에서 잘 손질된 스승님의 기억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또한 감염시킬 수 있는 지독한 병입니다. 교회를 공동체나 가족 또는 어머니가 아니라 둥지로 만들면서 말입니다 성령께서는 몸소 문을 여시고 이미 이야기되어 오고 행해진 것들을 넘어서도록, 용기 없고 조심하는 신앙의 경계를 넘어서도록 우리를 떠미십니다. 세상에서는 꽉 짜여진 조직과 분명한 전략이 없다면 무너집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성령께서 메시지를 선포하는 사람들에게 일치를 보장하십니다. 사도들은 떠났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그러나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한 가지가 그들을 계속 나아가게 합니다. 그들이 받은 것을 주겠다는 열망. 성 요한의 첫 번째 서간의 처음 부분은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요한의 첫째 서간 1,3 참조).

 

여기에서 우리는 일치의 비밀이 무엇인지, 성령의 비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교회 일치의 비밀, 성령의 비밀은 선물입니다. 성령님 당신 자신이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사시고 이 방법으로 우리들을 같은 선물의 공유자들로 삼으셔서 그분께서 우리를 함께 있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선물이라는 것을 믿는 것, 그분께서 빼앗는 것이 아니라 주심으로써 활동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이것이 중요합니까? 왜냐하면 믿는 이가 되는 우리의 길은 우리가 하느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빼앗아 가는 하느님, 당신 자신을 강요하는 하느님을 마음 속에 두고 있다면 우리도 또한 빼앗고 싶을 것이고 우리 자신을 강요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자리를 차지하면서 인정해 주기를 요구하면서 권력을 추구하면서. 그러나 우리가 선물이신 하느님을 우리 마음 속에 둔다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있는 그대로가 그분의 선물이고 자유롭고 분에 넘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때 우리도 또한 우리의 삶을 선물로 바꿀 것입니다. 겸손하게 사랑함으로써 자유롭고 기쁘게 봉사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진정한 모습을 세상에 줄 것입니다. 교회의 살아 있는 기억, 성령께서는 우리가 선물로부터 태어났고 우리가 줌으로써 자라난다는 것을, 자기 자신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어 줌으로써 자라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내면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것에서 우리를 가로 막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 봅시다. 말하자면 언제나 우리 마음의 문턱에서 유혹하면서 그 선물을 가로 막는 세가지 주요 적들이 있습니다. 자기애(narcissism), 피해의식(victimhood) 그리고 비관주의(pessimism). 자기애는 오로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숭배하게 만들어서 우리에게 좋은 것에만 관심을 두게 합니다. 자기애에 빠져 있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그것에 이득을 얻는다면 삶은 좋은 거야”. 그리하여 그 또는 그녀는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왜 내가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주어야 하지?” 이 세계적 대유행의 때에 자기애는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요. 우리 자신의 필요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성향,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성향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나약함과 잘못들은 인정하지 않는 성향. 그러나 두 번째 적, 피해의식은 똑같이 위험합니다. 피해자들은 매일 그들의 이웃들에 대해 이렇게 불평합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 아무도 나를 도와 주지 않아,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앙심을 품고 있어!” 우리가 얼마나 자주 이런 불평들을 듣습니까! 그 또는 그녀는 왜 다른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을 갖지 않지?라고 물으면서 피해자의 마음은 닫혀 있습니다. 이 위기에서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피해의식이 얼마나 추합니까!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우리가 경험한 것을 경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이것이 피해의식입니다. 마지막으로 비관주의가 있습니다. 여기에 끝없는 불평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잘되지 않아, 사회도 정치도 교회도…”. 비관주의자는 세상에 화를 냅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주는 것이 뭐가 좋아? 그건 쓸데 없는 일이야.” 이 순간에 새롭게 시작하려는 큰 노력 안에서 모든 것을 가장 나쁜 빛 속에서 보고 아무것도 예전대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라고 말하는 성향, 비관주의는 얼마나 위험한지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 때 확실히 돌아오지 않는 한 가지는 희망입니다. 이 세 가지거울의 우상 자기애의 거울 신, “나는 오로지 불평할 때 인간적이라고 느껴라는 불평의 신, “모든 것이 어두워, 미래는 암울해라는 부정적 성향의 신 우리는 희망의 기근을 겪고 있고 그리고 우리는 삶의 선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선물인 그 선물을 맛보고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자기애와 피해의식과 비관주의에서 낫게 하시는 하느님의 선물, 성령님이 우리는 필요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거울에서 불평에서 그리고 어둠에서 치유하십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그분께 기도합시다. 하느님의 기억, 성령께서 우리 안에 받은 선물의 기억을 되살려 주십니다. 우리를 이기주의의 마비에서 자유롭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 안에 봉사하고 선한 일을 하려는 열망을 일깨우소서. 이 위기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은 우리 자신 안에 갇혀서 그것을 허비하는 비극입니다. 오소서, 성령님. 당신께서는 화합이십니다. 우리를 일치를 이루는 사람들로 만들어 주소서. 당신께서는 언제나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십니다. 저희에게 하나의 가족이 되기 위해서 우리 자신 밖으로 나가는 용기, 서로 사랑하고 돕는 용기를 주소서. 아멘.

 

(최종 번역 날짜와 시간 2020. 6. 5. 17:56)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0/documents/papa-francesco_20200531_omelia-pentecoste.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www.mariasarang.net/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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