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6월 11일[(홍)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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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6-11 | 조회수1,52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6월 11일 목요일 [(홍)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바르나바 성인은 키프로스의 레위 지파 출신이다. ‘바르나바’라는 이름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본이름은 요셉이며(사도 4,36 참조) 마르코 성인의 사촌(콜로 4,10 참조)이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사도 11,24)으로 칭송받는 바르나바 사도는 유다교에서 개종한 뒤 자신의 재산을 팔아 초대 교회 공동체에 바치고 다른 사도들과 함께 열성적으로 선교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성인은 60년 무렵 키프로스의 살라미스에서 순교하였다. 제1독서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11,21ㄴ-26; 13,1-3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가라고 보냈다.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주님께 인도되었다.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단식하고 있을 때에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화답송 시편 98(97),1.2-3ㄱㄴ. 3ㄷㄹ-4.5-6(◎ 2 참조)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주님은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주님은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주님은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찬미 노래 불러라. 비파에 가락 맞춰 노래 불러라. 쇠 나팔 뿔 나팔 소리에 맞춰, 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환성 올려라. ◎ 주님은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복음 환호송 마태 28,19.20 참조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복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복음입니다. 10,7-13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받는 것은 당연하다.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영성체송 요한 15,15 참조 종이라고 부르지 않으리라.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으니,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부른다. 오늘의 묵상 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 이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오로를 대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그가 정녕 위로의 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감옥에 가둘 생각으로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바오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사흘 동안 눈이 멀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마스쿠스에서 하나니아스를 만나 눈을 뜨고 회심하여,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불신과 오해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교회 공동체 안에 머물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을 찾아가 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났지만 정식으로 선교사가 되지 못한 채 고향 타르수스로 돌아가야만 하였습니다. 지난 뒤에서야 바오로는 비로소 선교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계기를 마련해 준 이가 바로 바르나바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모든 신자가 바오로를 두려워할 때 바르나바만이 그를 받아들여 사도들에게 인도해 줍니다. 파견되었을 때 그곳과 가까운 타르수스에 가서 바오로를 만납니다. 그리하여 철저한 외로움 속에 있던 바오로를 이끌고 안티오키아뿐 아니라 소아시아 일대를 함께 다니며 선교 활동을 합니다. 이렇듯 바르나바는 바오로에게 큰 위로와 격려를 건넨 은인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로서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성경에는 이에 관하여 명시적으로 밝힌 본문이 없습니다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아마도 바르나바는 자신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얻게 된 것을 두고두고 감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었기에 아무런 대가 없이 바오로에게 다가가 그를 믿어 주고 인도하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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