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일곱 번 말하는 분 (마태5:33-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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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20-06-13 | 조회수1,90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6월 13일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일곱 번 말하는 분 (마태5:33-37)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홀코스 맹세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솨바에서 나온 단어거든요. 이 솨바 ,맹세하다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쉐바에서 나온 단어인데요 부엘쉐바 아시죠? 똑같은 단어예요. 쉐바, 그 쉐바의 의미가 일곱이라는 뜻이예요. 일곱, 사람들이 부엘쉐바를 일곱 우물이라고도 해석을 한 거죠. 사실은 일곱우물 아니예요. 거기에 우물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맹세하다 그 솨바는 일곱 번 말하다가 되요. 그렇게 히브리사람들은 일곱 번 말하다 라는 말에 의미로 맹세, 언약, 약속 이라는 말로 써요. 그리고 그들은 그걸 스타우로스 기둥으로 표기를 해요.
그래서 예수님이 달린게 십자가라고 하지만 사실은 기둥이예요. 그 십자가는 사실 태양신을 섬기던 이들의 표식이었어요. 문양이었어요. 그래서 나치표시 있죠. 이것도 십자가의 변형이예요. 불교의 만자 있죠. 그것도 십자가의 변형이예요. 그것은 원래 태양신의 문양이었어요. 콘스탄틴 대제가 로마의 국교를 그리스도교로 받아들이면서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표식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태양신을 섬겼던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그 십자가를 가져다가 쓴 거예요. 사실은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안달렸을지도 몰라요. 기둥이란말예요 스타우로스는 그냥 기둥이예요. 십작가가 아니예요. 원래가, 그냥 우리가 십자가라고 부르는 거죠.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느님께서 창조를 시작하시면서 안식까지 일곱 번 말씀하세요. 일곱 번 말합니다. 그 안식은 여섯 번째 날 자칼과 네케바 굳이 남자와 여자, 신랑과 신부 이렇게 번역해 보자구요. 자칼과 네케바의 탄생으로 완결이 되죠. 그 둘이 한 몸이 되는 것, 요게 이제 안식의 그 완료 지점이란 말이죠. 그 자칼과 네케바는 신랑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신부인 교회의 이야기예요. 그 둘이 하나로 연합이 되어서 신랑이 신부가 되고, 신부가 신랑이 될 때 안식이 찾아오는 거예요. 그러면 더 이상 하느님이 할 일이 없어지잖아요. 그런데, 창세기의 그 창조 이야기는 둘씩 짝을 이루고 있는거라고 했죠. 첫째날과 넷째날, 둘째날과 다섯째날, 셋째날과 여섯째날 이렇게 짝, 짝, 짝이잖아요. 여섯째날 자칼과 네케바가 이제 연합이 되니까 셋째날에 물과 뭍이 갈라지고 씨 맺는 채소, 씨 맺는 나무가 등장하죠. 채소라는건 광합성을 해야 비로소 살 수 있는거 아니예요? 근데 태양은 식물의 광합성를 도우는 태양은 넷째날 만들어졌단 말예요. 셋째날 만들어진 그건 뭐냔 말예요. 어떻게 존재하죠 그게?
(창세1:11~12)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2 땅은 푸른 싹을 돋아나게 하였다.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여기서 씨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제라 후손이예요. 자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약속의 후손, 자손을 언약으로 주시죠. 고때 그 단어가 이 씨예요. 제라란 말이예요. 동일한 단어란 말입니다. 11절 후반부를 직역하면 그 안에 그 후손 그 씨를 가진 열매 내는 나무란 뜻이예요. 신약에 무수히 등장하는 열매 맺는 나무의 이야기가 여기에 처음 등장하는거예요. 단순히 씨가진 채소, 씨가진 나무 그런걸 창조했다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씨가 씨를 갖게 되면 여자가 남자의 씨를 갖게 되면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케 하는 것처럼, 이 자칼과 네케바가 이제 하나가 되어서 어떤 존재, 사람이 되어 하느님과 함께 안식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씨 후손이 필요하다 그래서 셋째날 제라 씨, 그 씨를 가진 사람이 생명이라는 열매를 내잖아요. 그 이야기와 이렇게 연결시켜 놓은거란 말예요.
바로 이러한 언약의 이야기를 하느님이 일곱 번 말하여 완성하시죠. 그게 안식이잖아요. 완성이 그걸 솨바라고 그래요. 맹세라고 그래요 그것을, 마찬가지예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약속의 후손, 씨를 주시겠다 라고 약속하시는데, 몇 번 말하는 줄 아세요? 일곱 번 말해요. 요한묵시록에서도 일곱 인이 나오고, 일곱 나팔이 나오고, 일곱 대접이 나오죠. 일곱 인은 뭐예요? ‘떼라’열리는거예요. 비밀인 묵시, 진리가 ‘인’ 떼어지고, ‘나팔’ 말해지고, 결국 대접, 등경위에 있는 기름 담는 성서의 그 촛대 있잖아요. 촛대의 일곱 대접이예요. 요걸 하나하나 부어버리면 어떻게 되죠? 빛이 꺼지는 거예요. 마지막게 쏟아지면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빛이 아직 있을 때 왜? 꺼져가는 등불도 내가 죽기전까지는 끄면 안되는거거든요. 그래서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는 하느님,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 마지막 등불이 꺼지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냐면, 빛이 있을 때 다니라고 그래요. 그러나 내가 가면 네 안에 빛을 가지고 있어야 너는 살아! 그래요 그 대접이란 그게 맹세예요 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이게 하느님의 맹세에,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 그것을 가리키는거란 말예요. 이렇게 맹세는 당신 자신의 열심과 능력으로 참 성전을 완료하시겠다라는 하느님의 맹세인거예요. 인간의 맹세는 없어요. 하느님의 맹세예요.
(잠언 9:1) 1 지혜가 일곱 기둥을 깎아 자기 집을 지었다.
기둥이 뭐라고 했죠? 언약, 약속이예요. 이 어절을 히브리원어로 보면 호크모트바나바이트하치아부아무드쉐바 지혜, 지혜는 항상 성전 짓는 지혜라고 했습니다. 지혜가 성전을 짓는데, 이 바이트가 집이 성전이거든요. 성전을 짓는데, 일곱 기둥, 약속, 언약, 언약을 새겨서 짓는다라는 말이예요. 이것을 맹세라고 그래요. 솨바라고 그래요. 일곱 번 말하다. 따라서 맹세라는건 하느님의 것이지 사람의 것이 아닌거예요. 일차적으로. 그런데 사람이 그 맹세에 기여를 하겠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나서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게 거짓 맹세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느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레위19:12) 12 너희는 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나는 주님이다.
거짓된 이름으로 맹세하지 마라 그래요. 이것을 히브리 원문으로 직역하면 이러합니다. 내 이름 안에서 거짓을 위해 일곱 번 말하지 말아라 그러면 내 이름이 더러워진다. 내가 일곱 번 말한 것 그 맹세의 진위를 갖고 거짓을 위해 사용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내 이름이 더러워진다 그래요. 성경에 이름이 많이 나오죠. 확실히 알고 가세요. 여기에서 더러워진다 라고 번역이 된 ‘하랄’ 이라는 단어가 얼룩지게 만들다 예요. 알록달록 얼룩지게 만들다. 점 있게 만들다. 너희들이 거짓을 위해 내가 일곱 번 말한 것, 내 맹세를 사용하면, 성경을 너희들이 거짓을 위해 사용하면 내 이름을 얼룩덜룩하게 만드는거야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율법에 보면. 점 있고 흠 있고 얼룩덜룩한 것을 제물로 드릴 수 있어요? 못 드려요. 그런데 인간들은 점 있고 얼룩덜룩한 가짜 제물 만들기에 달인들이예요. 하느님이 안 받으시는 걸 정말 열심히 만들어 내는게 인간들이예요. 그 대표 주자가 이스라엘이 되기 전에 야곱이죠. 야곱은 강도, 발목을 잡는 자, 실족 시키는 자예요. 걸어가는 사람 발목 잡으면 어떻게 되죠? 넘어져요. 야곱이라는 이름이 강도잖아요. 그 말은 남의 것을 훔치는 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을 강도 주지도 않았는데 갖다가 지 맘대로 쓰는걸 도적, 강도 그래요 . 야곱의 이름이예요.
(창세30:32~39)32 오늘 제가 장인어른의 양과 염소 사이를 두루 다니면서, 얼룩지고 점 박힌 모든 양들을, 그리고 새끼 양들 가운데에서 검은 것들을 모두 가려내고 염소들 가운데에서도 점 박히고 얼룩진 것들을 가려내겠습니다. 이것들이 저의 품삯이 되게 해 주십시오. 33 제가 정직하다는 것은 뒷날 장인어른이 저의 품삯을 확인하러 와 보시면 증명될 것입니다. 제가 차지한 염소들 가운데에서 얼룩지고 점 박히지 않은 것이나, 새끼 양들 가운데에서 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들은 제가 훔친 것이 될 것입니다.” 34 라반은 “좋네. 자네 말대로 함세.” 하고 대답하였다. 35 그러나 라반은 바로 그날로, 줄쳐지고 점 박힌 숫염소들을 가려내고, 얼룩지고 점 박힌 암염소들과 흰 점이 있는 것들과 그리고 새끼 양들 가운데에서 검은 것들을 모두 가려내어 자기 아들들에게 맡겼다. 36 그러고서는 야곱이 자기의 남은 양과 염소를 치는 동안, 라반은 야곱을 자기에게서 사흘거리로 떼어 놓았다. 37 야곱은 은백양나무와 편도나무와 버즘나무의 싱싱한 가지들을 꺾고, 흰 줄무늬 껍질을 벗겨 내어 가지의 하얀 부분이 드러나게 하였다. 38 그런 다음 껍질을 벗긴 가지들을 물통에, 곧 양들과 염소들이 물을 먹으러 오는 물구유에 세워, 가축들이 그 가지들을 마주 보게 하였다. 그런데 양들과 염소들은 물을 먹으러 와서 짝짓기를 하였다. 39 양들과 염소들은 그 가지들 앞에서 짝짓기를 하여 줄쳐진 것, 얼룩진 것, 점 박힌 것들을 낳았다.
여기에서 점 있는 것으로 만드는거, 검은 것으로 만드는거 이것을 ‘하랄’ 이라고 그래요. 더럽히는거. 인간이 자기의 꾀로 자기의 소유를 늘리고 자신의 가치를 축적하는데 그 모든게 다 하느님이 안 받으시는 것이더라 를 보여주는 거예요. 흰 것을 줬더니 자기의 유익을 위해 결국, 얼룩진 것으로 바꾸어 내더라는 거예요. 그리고는 성경이 뭐라고 하면은 그가 부자가 되었더라 라고 그래요. 성경이 금하는 부자예요. 부자가 되었다. 야곱이 주님께서 절대로 바늘귀 문으로 못 들어간다 라고 하는 낙타가 되어 버린 거예요. 부자가 되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환도뼈가 부수어지고, 환도뼈는 남자의 씨가 담긴 그릇이라고 그랬죠. 자손이 담긴 그릇 뭐예요? 예수 . 씨를 담고 오셨잖아요. 진리를 담고 오신 분이 부수어 지는 거예요. 죽는겁니다. 그 야곱이 그 은혜에 의해 이스라엘로 바꾸어 지는 거예요. 승리죠. 이게 거짓 맹세에 내용이예요. 그래서 얍복강 이전의 야곱이 항상 거짓말 하는 자로 나오는 거예요. 야곱이 아버지속여, 형 속여, 외삼촌 속여, 다 속이는 자로 나오는 거예요. 거짓말, 나쁜 말을 가진 자로 등장을 하는 거죠. 그렇다면 도대체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이기에 하느님은 그 이름을 이토록 소중하게 말씀하실까?
(묵시 19:12~13) 12 그분의 눈은 불꽃같았고 머리에는 작은 왕관을 많이 쓰고 계셨는데, 그분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 그분 몸에 적혀 있었습니다. 13 그분께서는 또 피에 젖은 옷을 입고 계셨고, 그분의 이름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이름이 하느님의 말씀이래요. 그런데 그 말씀은 자기만 아는 말씀이래요. 아무도 그 이름 그 말씀의 진위를 알아먹지 못해요. 그래서 그 분이 직접 오셔서 그 이름을 말씀해 주셔야 되요. 이름이라는 것이 뭐죠? 특히 고대시대 때 이름은 그 존재의 내용이며 그 내용의 축약을 이름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이름을 함부로 안 지어요. 성경에 나오는 이름은 전부 일반명사로 해석을 해야 되요. 다 이름이 괜히 준 게 아니예요. 제자들의 이름도 다 의미가 있어요. 이 하느님의 이름은 하느님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거니까, 자기밖에 모르는 것이 당연하죠? 하느님을 누가 알아요? 그래서 그 이름 그 축약된 하느님을 설명하는게 말씀이잖아요? 그래서 그 이름을 말씀이라고 하는 거예요. 내용이란 말예요 하느님의 내용
(요한1:1)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자, 하느님의 이름이 말씀이예요. 그렇다면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그 이름을 허위로 사용하여 거짓 맹세를 하면 그 이름이 더러워진다 라는 레위기의 말씀이 무슨 의미겠어요? 진리의 말씀, 하느님을 설명하는 그 진리의 말씀을 엉뚱하게 사용해서 그 진리를 왜곡시키지 말라는 뜻이예요. 그게 내 이름 더럽히지마, 거짓 증거 해서 내 이름 더럽히지마가 그 말이란 말예요. 맹세라는건 하느님의 것인데 왜 너희가 그 맹세의 주인공이 될려고 그래~ 선악의 주체는 하느님이야. 그런데 왜 너희가 선악 판단의 주체가 될려고 그래~ 똑같은 말이예요. 맹세는 우리가 내고 우리가 지켜내는게 아니라 하느님의 맹세가 던져지면 우리가 그 맹세 안에서 맹세의 열매로 지어지는거예요. 우리는. 그러니까 맹세를 하는게 아니라 그 하느님의 맹세가 되는 거예요. 내가. 성경은 맹세를 하라고 이야기 할 때 항상, ‘아싸’ 동사를 쓴다고 그랬죠? 그건 ‘되다’ 라는 뜻이지, ‘행하라’는 뜻이 아니란 말예요. 맹세가 되어라. 하느님이 맹세하신 그 내용, 그 성취가 되어라 지~ 맹세해! 서원해! 그런 말이 아니란 말예요.
(신명10:20) 20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께만 매달리고 그분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한다.
자 한글성경으로만 보면 하느님이 일구이언하는 것 같잖아요?. 맹세하지마! 그래 놓고 여기서는 또 그 이름으로 맹세하래요. 조금 아까는 그 이름으로 맹세하지마! 그래 놓고. 야훼 하느님만이 경외의 대상이다. 그러니까 너희는 그 분에게 ‘매달리고’가, 짝 달라 붙으라는 뜻이예요. 연합. 짝 달라 붙어서 그 진리로 맹세의 성취물이 되어라 라는 그 뜻이예요. 맹 세해~ 이런 말이 아니라. 여기에도 역시 이름이 나오죠. 그 이름이라는 히브리어가요 ‘쉠’이라는 단어인데, 그 단어를 파자해 보면 ‘쉰’과 ‘멤’ 이예요. 히브리어 자음 알파벳은 모두 다 의미와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 알파벳만 다 알면 성경 전체를 쉽게 알 수 있어요. 내용만 알면은. ‘쉰’ 이라는 문자가 ‘분석된’ 이란 뜻이고 ‘멤’ 이라는 문자가 ‘물’ ‘말씀’ 이란 뜻이예요. 그러니까 이름 ‘쉠’이라는 단어에 그 원의는 ‘분석된 말씀’, ‘온전한 것으로 이해되어진 말씀’ 이예요. 그게 이름이잖아요. 그 존재의 내용을 분석하여 올바로 이해하여 내가 갖고 있는거. 그걸 ‘쉠’이라고 해요. 이름이라고 그래요. 그 단어가 ‘솸’ 이라는 단어와 자음이 같아요. 히브리어의 모음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그냥 소리를 내기 위해 붙여 놓은 거예요. 그래서 히브리어는 모음을 다 빼고 그냥 이해를 해야 되요. 그 ‘쉠’ 과 ‘솸’ 은 같은 자음이예요. 그러니까 정확하게 그 두 단어는 같은 내용을 갖고 있는 건데 그 ‘솸’은 사전적 의미가 ‘거기’예요. 그래서 ‘솸’ 에 그 ‘물’ ‘마임’ ‘멤’ 이라는 단어를 붙여버리면 ‘샴마임’ 하늘이 되요. 거기에 물이 있다.
진리의 말씀이 있는 거기를 ‘하늘’ 이라고 그래요 성경은요. 거기에 물이 있다. 물이 없으면 사막, 먼지예요. 그래서 ‘시몬’ 이라는 이름이 사막, 먼지라는 뜻이라고 그랬죠. 그 ‘시몬’을 ‘베드로’, ‘반석’은 뭐라고 그랬어요? ‘물을 내는 것’ 이라는 뜻이예요. 반석이라는 단어 자체가. ‘시몬’ 말이 없는 먼지, 사막을, 광야를 물을 주어 물을 내는 자로 만드는게 시몬, 베드로란 말입니다. 자 그러니까 그 이름이라는 단어는 ‘물이 있는 거기’, ‘진리가 있는 거기’ 그런데 구약에서는 항상 성전에서 물이 흘러 나오죠? ‘성전’을 이야기해요. 그런데 우리가 진리를 담게 되면 우리 안에서 진리, 물이 흘러 나오죠. 예수님도 그러잖아요. ‘성령 받아라’ 그러면 너네 ‘배’에서 그게 ‘성전’이란 뜻이거든요. 배에서 물이 흘러 나올거다 그래요. 우리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게 하늘이예요. 성전이요. 참 성전. 그래서 진리를 품은 성도를 요한묵시록 19장에서 이름을 지었는데 뭐라고 그래요? ‘하느님의 말씀들’ 이라고 그러죠. 성도들을 ‘하느님의 말씀들’ 이래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들’ 이래요. ‘진리가 된 자들’ 이라는 뜻이죠. 그런데요. 그 ‘솸’ 이라는 히브리어는요 ‘쑴’ 이라는 단어에서 나왔거든요. 그 ‘쑴’ 이라는 단어는 설립하다, 세우다, 설치하다 라는 뜻이예요. 그거는 성전을 세울 때 쓰는 단어거든요. 그런데 거기에서 이 ‘솸’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니까요. ‘거기에 물이 있다’ 가 뭐라고 그랬어요? ‘물이 흘러 나오는 것’, ‘참 성전’ 여러분이 하느님의 처소, 성전이잖아요. 성경은 다 일관성 있게 그 얘기만 하고 있어요. 우리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누구라고 그래요? 어린양의 신부, ‘나’ 천국은 우리라니까요 하느님 나라는 우리란 말이죠. 그래서 베드로가 우리를 거룩한 나라 라고 하는 거예요.
(창세 2:7~8)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아담),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진리를 받은 사람,)가 되었다. 8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쑴’ )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출애 40:18) 18 모세는 성막을 세우는데, 먼저 밑받침을 놓은 다음 널빤지를 맞추고 가로다지를 끼운 뒤, 기둥을 세웠다.
하아담 속에 들어 있는 우리요. 교회. 우리를 성전으로 세우는게 하느님의 목적이었다 라는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 아담이라는 단어가 ‘알레프’로 시작해요. 그게 하느님이라는 뜻이죠. ‘소‘ ‘하느님’ ‘사람’ 이렇게 세 가지 뜻이 있는데 ‘알렙’ 그리고 ‘달렙’ 구별된 이란 뜻이예요. 그리고 ‘멤’ ‘물’ 이라고 했죠. ‘말씀’ 그러면 ‘아담’, ‘사람’ 이라는 그 이름의 뜻이 뭐예요? ‘구별된 하느님의 말씀’ 구별된, 거룩한 하느님의 말씀들이 아담이예요. 원래 인간의 존재 목적이예요. 그게. 창조의 목적이라니까요. 그래서 결국, 묵시록에 가면 우리가 말씀들로 완성이 되는 거예요. 그 말씀은 뭐라 그랬어요. 하느님을 설명하는 진리니까 우리가 하느님화 되는 거예요. 정말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하느님의 진짜 처소가 된 자’ 그게 하아담 이예요. 그래서 성경은 하느님께서 아담을 성전으로 세우셨다 라고 ‘쑴’ 이라는 단어를 써서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는 거죠. 따라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 라는 말은 ‘스스로 성전으로 완성되어 질 수 있다’는 다른 말로, ‘스스로 말씀을 지켜 내가 성전이 될 수 있다’ 라는 그런 율법주의적 발상으로 말씀을 해석해서 엉뚱하게 전하고 행하지 말라 라는 말이예요. 그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 하지마 라는 뜻이예요. 그 이름이라는 단어 자체가 ‘하느님이 성전을 세우시다’ 이런 뜻이라니까요.
(히브 6:16~18)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1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18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히브 7:20~21) 20 이 일은 하느님의 맹세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은 하느님의 맹세 없이 사제가 되었습니다. 21 그러나 그분께서는 “주님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않으시리이다. ‘너는 영원한 사제다.’”라고 하였듯이, 그분께 말씀하신 분의 맹세로 사제가 되셨습니다. (히브 7:28) 28 율법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을 대사제로 세우지만, 율법 다음에 이루어진 맹세의 그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드님을 대사제로 세웁니다. (신명 23:22~24) 22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 서원을 할 경우, 그것을 미루지 말고 채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반드시 그것을 너희에게 요구하실 것이고, 너희에게는 죄가 될 것이다. 23 아예 서원하지 않으면 죄가 될 일도 없다. 24 너희 입으로 주 너희 하느님께 스스로 서원한 대로, 너희 입에서 나온 것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여기 보면 분명히 우리 입에서 나와야 하는 서원이 있다는 거죠? 자식이 없는 사람이 하느님 제게 자식을 주시면은 이 자식은 하느님께 꼭 받치겠습니다. 이게 서원인가요? 그러면 그게 서원이라면 그리고 그걸 반드시 갚아야 하는거라면 하느님은 우리가 준다고 그러면 뭐든지 그냥 넙죽 넙죽 다 받아야 되나요? 우리가 하느님께 받칠 수 있는 것 중에 하느님의 풍유에 도움 되는게 뭐가 있어요? 22절 보면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 서원을 할 경우’ 이라는 어구가 있어요. 그건 네 하느님 야훼가 주신 진리의 맹세를 네 입으로 그 진리를 말했거든 이런 뜻이예요. 그 일곱 번 말한걸 네 입으로 말했거든 이런 뜻이예요.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 그래요. 갚기를 더디 하지 말래요 여기서 갚다 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샬롬’ 이예요. 그러니까 뭐냐면 네가 그 진리를 들어서 이해해서 네 입으로 그걸 말했다면 그 진리가 되어라 라는 뜻이지 얼른 갚어라 가 아니란 말예요. 이게. ‘샬롬’ 이라는 단어가 평화라는 뜻도 있지만, 완성, 성전을 완성하다 이런 뜻도 있잖아요. 그래서 솔로몬이 殿 짓기를 마쳤다 이걸 ‘샬롬’ ‘샤람’ 이라고 그래요. 네가 그 진리를 입으로 말했거든 그 진리가 되어라 그걸 방해하거나 더디게 하면 그게 죄란다. 이런 뜻이예요. 네가 입으로 진리 진리 하는데 네 안에서 하느님이 그 진리를 네가 입으로 낸 진리를 반드시 찾으신다 그러니까 그 진리로 진리가 되어라 예요. 그걸 갚아라 라고 번역을 해 놓거예요. ‘다라쉬’ ‘다라쉬’ 반드시 찾으신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 안에서 반드시 찾으신다는 그 ‘샬롬’이 뭔지도 한번 규명을 해보잔 말예요.
(요한 14:26~27)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여기서 세상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가 ‘호코스모스’ 예요. ‘호코스모스’는 단순히 이런 세상 인간들 사는 이 세상을 지칭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그 묵시를 설명해 주기 위해 차서대로 준 것. 그 안에는 성전, 성경, 인간 이 세상 다 들어가 있는거죠. 그 ‘호코스모스’ 그 껍데기로써의 그 ‘호코스모스’ 가 주는 평화가 아니라는거예요. 그걸 법으로 율법으로 껍데기로만 읽어서 그걸로 평화에 도달하려고 그러면 안된다는 거예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실려고 하는 평화는 진리의 말씀 그 껍데기 안에 들어 있는 그 내용으로 주시는 이 ‘호코스모스’ 와는 다른 ‘평화’이다 그러는거죠. 그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 라고 하는거예요. 세상이 줄 수 없는 ‘편안함’ 이런게 아니란 말예요. 솔직히 그렇게 따지면 세상이 주는게 훨씬 편안하지. 돈 있어 봐요 편안하게 살아요. 그런 종류의 편안함 평화 아니란 말예요. 이 ‘호코스모스’ 적이지 않은 그 ‘샬롬’ 그거 하느님이 ‘다라쉬’ ‘다라쉬’ 반드시 찾으실꺼예요. 네 안에서. 그 뜻이예요.
그리고는 23절에서 ‘아예 서원하지 않으면 죄가 될 일도 없다.’라고 선언을 해버리죠. 서원을 안했으면 넌 죄가 없는건데 서원을 해서 너는 죄가 있는 자가 됐다. 이렇게 이해를 한다 말이죠. 이건 그 말이 아니라 너는 약속을 하지 못한다. 너는 애초에 그런 능력이 없다. 그래서 너희들이 서원을 했다고 하더라도 네 말로. 그건 너희들에게 죄가 되지 않는다. 라는 뜻이예요. 그러니까 자유하세요.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약속을 내어 놓지 말라는 거예요. 하느님의 약속을 말하라 하는 거예요. 그걸 서원이라고 그래요. 그리고 그 약속은 우리 안에 ‘샬롬’ 으로 완성이 될 것이며, 성전으로 완성이 될 것이며 그 ‘샬롬’을 하느님이 반드시 찾으신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24절로 이어지죠.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이 말은 네가 입으로 낸 약속 하느님의 약속 일곱 번 말하신 그 약속 네가 입으로 낸 그 약속 그 약속의 말씀대로 되어라 예요.‘
아싸’ 동사란 말예요.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라고 해 놨으니까 꼭 실행해 이런 것처럼 보이죠? ‘아싸’ 동사예요. ‘되다’ 라는 거예요. 되어라. 그 ‘자원한 예물’ 이라는 그런 단어는 아예 원문에 나오지도 않아요. 추측해서 써 놓은 거지 이거는. 이건. ‘자발적으로 한 말’ 이런 뜻인데 그걸 그렇게 번역을 해 놓은 거죠. ‘네가 가지고 있는 풍성한 선물은 너의 입안의 그 말이다’ 예요. 자원한 예물, 네가 꼭 드리겠다고 한 예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바쳐야 돼~ 이런 말이 아니란 말예요. 그러니까 이 구절들도 우리에게 서원을 해라 그리고 서원한 것은 꼭 지켜라 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아니라 하느님의 맹세, 일곱 번 말 하신 그 맹세를 잘 배워서 입으로 말하고, 그 말처럼 되어라 라는 뜻이예요. 그런데, 이런 구절들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이렇게 착취해 내는 사람들이 많죠.
그러니까 교회 가는게 겁이 나는 사람이 있다고. 돈 내라고 그러지. 심지어 교회 건물 짓는데 지하를 포크레인으로 파야 되는데 교인들한테 삽을... 돈 아낀다고...교대로 24시간 그 파라고 해서 몇 백 평 되는걸 팠대요 진짜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남편이 그 삽을 찾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하면서도 교회를 계속 나가야 합니까? 이렇게 상담하신 분 있더라고요. 그거 안파도 되요. 그렇게 헛소리를 하는게 이런 말씀을 갖고 이렇게 사람들을 협박하고 회유하고 선동하는데 쓰는 이걸 거짓말 이라고 해요. 그걸 하느님의 말을 도둑질 했다고 그래요. 하느님이 주지도 않았는데 지 맘대로 써 먹은 거니까 그걸 도둑질 이라고 해요.
(레위19:11~12) 11 너희는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속여서는 안 된다. 동족끼리 사기해서는 안 된다. 12 너희는 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나는 주님이다.
속이다, 거짓말 하다, 도적질 하다 ‘가나부’ 인데 이걸 같이 써버리죠? 도적질 이라는건 단순히 남의 것을 훔쳐가는게 아니라 ‘하느님의 말’ ‘진리’를 도적질 하는 그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기에서는. 그래서 전부 말과 연결이 되어 있잖아요. 그렇게 도적질 하고 강도질 하는 자 이름을 가진게 야곱이었잖아요. 발목을 잡는자, 실족 시키는 자 그래서, 주님이 이렇게 말을 이으시는 거죠.
(마태5:34~36)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 보면 ‘호우라노스’ ‘호게’ ‘히에로솔루마’ ‘호케팔레’ 이렇게 나와요. 하늘, 땅, 예루살렘, 머리 그것 안에서 여기 또 다른 단어예요. ‘옴누하지마’ 이게 선언하지마 설교자들이 특히 잘 들어야 되는데 선언하지마 네 맘대로 하늘 안에서, 땅 안에서, 머리 안에서, 예루살렘 안에서 그거의 껍데기로 선언하지마 이런 뜻이예요. 함부로 가르치지마. 선언하지마. 말하지마. 그런데 그게 다 뭐였어요. ‘호우라노스’ ‘호게’ ‘예루살렘’ 다 뭐예요? 성전을 가리키는 거잖아요. 이게 눈에 보이는 나타나는 성전, 그것 안에서 그것으로 함부로 선언하지마. 이러는 거예요. 왜? 거기에는 진짜 내용이 있는거야. 그게 그 뒤에 붙은 말들이예요. 34절부터 보세요. ‘하늘로도 말라’ ‘호우라노스’ 단순예요. ‘하늘’ ‘우라노스’ 이 ‘우라노스’ 는 ‘호로스’에서 온 단어라고 그랬죠. 산, 그 산, 거기에서 ‘호르니스’ 가 되면 ‘새’ 가 되죠. 성전은 가죽으로 덮고 거기에다 새의 날개를 그렸어요. 그래서 ‘공중에 나는 새를 봐라’ 그러면 그 새를 이야기 하는 거예요. 성전 그 성전을 봐~ 들에 피는 백합화를 봐~ 성소 안의 등대 다, 성전 이야기 하는 거죠. 다, 성전 그런데 그 성전을 나타난 모습 그대로 이해하고 전해버리면 절대로 안돼! 왜? 그 하늘은 하느님의 보좌야 그래요. 그러면 하느님의 보좌가 뭐예요?
(묵시 22:1~2) 1 그 천사는 또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나와, 2 도성의 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이쪽저쪽에는 열두 번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다달이 열매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
보좌는 ‘열두 가지 열매’ 아들이죠. 그거요. 열둘은 항상 아들이라고 그랬어요. 루벤부터 시작해서 베냐민으로 끝나는거. 루벤, 베냐민 그죠? 봐라 이게 아들이야~베냐민, 이게 완성된 아들이야~열 둘이죠. 그러니까 ‘열두 가지 실과’ 를 맺히게 하는 생명수, 물이 뭐겠어요? 그래서 에덴에서도 네 물이 흐르는 거예요. 강이. 말씀이예요. 진리, 생명의 말씀. 그 말씀이 흘러 나오는 곳을 ‘보좌’ 라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그 하늘로도 선언하지마. 함부로. 왜? 그건 그 성전은 하느님의 말씀이 담겨져 있는 것이지. 그 보좌지. 그 껍데기로써의 ‘호코스모슨’ 는 사실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거야. 그게 진짜 내용이 아니야.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는 땅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그래요. 왜? 땅은 하느님의 발등상(발판)임이니까 그래요. ‘발등상’ 이 뭐예요? 발 놓는 곳, 발을 두는 곳. 성경을 보면요. 보좌, 발등상, 예루살렘 이건 같은걸 이야기해요 다. 성전이예요.
(예제43:2,7) 2 그런데 보라,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동쪽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큰 물이 밀려오는 소리 같았고, 땅은 그분의 영광으로 빛났다. 7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사람의 아들아, 이곳은 내 어좌의 자리, 내 발바닥이 놓이는 자리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영원히 살 곳이다. 다시는 이스라엘 집안이 나의 거룩한 이름을 부정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나 그 임금들이 불륜을 저질러, 또 임금들이 죽었을 때 그 주검으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부정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예레 3:17) 17 그때에 그들은 예루살렘을 ‘주님의 옥좌’라 부를 것이고,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이름을 찾아 예루살렘에 모일 것이다. 그러고는 더 이상 자신들의 악한 마음을 고집스럽게 따르지 않을 것이다. (이사 66:1~2)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이 나의 어좌요 땅이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에게 지어 바칠 수 있는 집이 어디 있느냐? 나의 안식처가 어디 있느냐? 2 이 모든 것을 내 손이 만들었고 이 모든 것이 내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굽어보는 사람은 가련한 이와 넋이 꺾인 이, 내 말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이다.
내가 짓는거야 집은. 처소는 내가 짓는거야. 그런데, 너희들이 내가 거하는 처소를 율법으로 제사로 열심히 희생제사 지내면서 짓겠다고 하는거구나~그러잖아요. 율법주의가 내가 거룩한 하느님의 성전으로 열심히 지어져 가야지~ 이게 율법주의잖아요. 그거 아니다 라고 하는거예요. 그건 하느님이 다 완료하시는거죠. 그런데 그 성전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냥 표피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그 성전은 곧 섬김의 대상이 되고 그래서 이디오피아 내시가 삼천킬로 밖에서 제물 끌고 온거예요. 성전에. 그래서 필립이 내년부터는 오지마~그리고 보낸거예요. 이사야서를 설명해주고, 신약으로. 내년부터는 오지마~안 와도 돼! 섬김의 대상이 돼버려요. 껍데기로 보면. 그리고 그 성전은 인간들이 해야 할 일로 가득찬 수고하고 무거운 짐의 집이 되어 버리는 거란 말예요.
그건 하느님의 말씀을 도둑질하여 잘못 전하는 거라 그랬죠. 그래서 주님은 율법주의 성전을 부수시면서 강도의 굴혈(소굴), 도적의 굴혈 이라고 그런 거예요. 내말을 왜 너희들 맘대로 바꿔가지고 가서 엉뚱한데 거짓을 설명하는데 쓰니? 거짓말하지마. 거짓이라는거 자체가 참을 설명하는 모형을 거짓이라고 그러잖아요. 짝퉁이 뭐예요. 진짜 루이비통을 루이비뚱으로 비슷하게 만드는 것을 거짓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이건 이거와 비슷하지 않으면 안된대니까요. 따른 제품이예요. 그러니까 가짜, 거짓 이런게 나쁜게 아니라구요. 그것으로 진짜를 알아 먹으면 그것 자체가 하늘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그걸 그냥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 전해 버리는 것을 거짓말 이라고 그래요. 그걸 거짓 예언자 라고 한다니까요.
성경에 나오는 수 많은 하라, 하지말라의 명령들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해 버리면서 그 진리, 진위를 설명해 주지 않고 사람들 협박하고 그 사람들에게서 열심을 끌어내려고 하는 그것, 이걸 거짓말이라고 해요. 도둑질이예요. 그것이. 그것을 강도의 소굴이라고 하는 거예요. 율법주의의 성전을. 주님께서 그 성전을 ‘호게’ 그 땅을 발등상, 당신의 발등상이라고 이야기를 하신건 주님은 교회의 머리죠. 진리예요. 머리예요. 머리. 여기에서 다 나오는거예요. 그런데 이 머리를 진리를 주님을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는 뭐가 가야 되죠? 발, 그래서 아름답도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그러는거예요. 그러니까 진리가 된 자들을 성경이 발 이라고 써요. 말씀들을 성경이 발이라고 부른다니까요. 그래서 그걸 실어 나르는 자들, 진리를 실어 나르는 자들, 그 안에서 진리인 생수를 흘러 넘치게 하는 자들을 성경이 발이라고 그러고 발을 아름답다 라고 그래요.
(로마 10:14~15)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진리를 담은 그 발들을 놓는게 말씀으로 가득차 있는게 성전이지. 그거 갖고 엉뚱하게, 이 땅이 뭐예요. 눈에 보이게, 이 자연이라 것 자체가, 묵시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이렇게 설명해 놓은 거잖아요. 그런데 그 땅은 말씀들을 놓은 거지. 발등상, 발을 두는 곳이지 그것 자체로서 무슨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 발이 가는 곳에서 진리를 갖지 않은 이 먼지들이 그 물을 받으면 진리가 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안 받으면, 먼지로 존재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제자들을 보내면서 너희들의 말을 받지 않거든 먼지로 떨어 버려라! 먼지 털고 와 그런게 아니라~ 너희 사마리아 땅 갔다 와서 꼭 먼지 털고와~ 그게 아니라, 먼지로 물을 안 받으면 먼지니까. ‘아파르’ 니까. 먼지로 털어버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도 선언하지말라 그래요. 왜? 예루살렘은 뭐라 그랬어요? ‘야라’ 와 ‘샬롬’ ‘야라’가 가리키다죠. 달을 가리키는 손, 그때 달을 보라 그랬더니 이걸 보고 있네 인간들이~ 성경 안에 진리를 담아서 진리 보라 그랬더니 글자만 보고 있어 문자만, 예수 안에 진리를 보라 그랬더니 예수만 붙들고 있어 주여! 어찌 하오리까! 예루살렘은 ‘샬롬’이 무엇인지 가리키는 거지. 그런거예요. 그것 자체가 뭐야? 그건 큰 임금의 성이다. 성경은 하느님의 진리를 받은 자들을 ‘발’ 이라고도 하지만, 그 단어를 ‘바실유’ 그래서, 왕 이라는 단어로도 써요. 발을 왕이라고, 그래서 여러분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는 거예요. 베드로가. 그러니까 그 왕들 중에 하나, 그 왕들 중에 첫 번 왕 이게 ‘만왕의 왕’ 이예요. ‘만주의 주’는 곧 그리스도인이라고 성경이 해석해 줬잖아요.
만주, 많은 그리스도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크리스도TM가 복수로 쓰인 적이 많다고 그랬잖아요. 이 주가 된 자들의 왕 ‘주’ 그러면 ‘만군의 주’ 는 뭐겠어요? 하느님의 말씀이 되어 그것으로 누군가에게 진리를 전하면, 그 안에 ‘비질리’ 와 전투가 일어나잖아요. 그래서 진리가 된 자들을 군대라고 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민수기에서는 군인들의 숫자만 세는거예요.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거라구요. 만군의, 이 군대에 왕, ‘주’
(묵시 1:4~5) 4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5 또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여기서 세상 임금들이 바로 여러분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이 세상의 임금들을 뭐 진짜 임금, 대통령 이런 것으로 해석을 하면 안되는거죠. 일곱 교회, 언약의 백성들에게 말씀이 전해져요. 말이 전해져요. ‘일곱 교회에게 편지하니’ 그러잖아요. ‘보좌’ ‘일곱 영’ ‘증인’ 다 뭐예요? 말과 관계 된 거죠? 보좌에서는 말, 물이 흐르고, 일곱 영은 말이라고 했으니까. ‘완전한 말’ ‘일곱 번 말하다’ 의 그 말, ‘일곱 영’. ‘증인’ 말로 본 것을 설명하는 거예요. 그 분을 ‘땅의 임금들의 머리’라고 그래요. ‘만왕의 왕’ 그 큰 임금에게서 평화가 완료되어서 교회에게 전해지는 거죠. 그러니까 예루살렘도 역시 하느님 홀로 완성하시는 그 ‘샬롬’ ‘평화’ 그 하늘 성전의 모형인거예요. 그러니까 껍데기만 보고 예루살렘으로 맹세하지마. 선언하지마. 율법 가르치지마! 그러는 거예요. 예루살렘이 율법주의의 본산이잖아요. 메카잖아요.
마지막으로 ‘머리로도 말라’ 그래요. 그러면서 ‘네가 한 카락도 희고 검게 할 수 없다’ 라고 이유를 대죠. 무슨 머리를 두고 맹세하는 사람 있어요?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 말이 아니죠. 구약시대에는 문둥병이 걸리면 털이 희게 된다 라고 그렇게 이제 털이 희게 되면 얘는 문둥병 걸리 자고 ‘부정한 자’ 다 라고 제사장이 선언해 버려요. ‘부정한 자 나가!’ 밖으로 쫓아내는 거예요. 털이 다시 검게 되면 ‘나았네’ 라고 하고, 그러니까 자기들이 갖고 있는 그런 규정 그리고 자기들의 눈, 자기들의 선악 구조로 정하고, 부정한 것을 지들 맘대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해 버리는 거죠. 그래서 성경이 뭐라고 그러냐면 그 문둥병은 하느님이 주시는 거다 그래요. 그러니까 머리털이 희게 되는 것도 하느님이 희게 하는 거고, 문둥병 걸리게 하는 것도 하느님이 하게 하는 거고, 낫게 하는 것도 하느님이 하게 하는 거예요. 왜? 뭔가 이유가 있어서 문둥병 걸렸다고 다 죄인이고 다 지옥가요? 아니잖아요? 그런데 뭔가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랬다면 너희들이 그것만, 껍데기로만 보고 너희들 머리로 얘는 정해 부정해 이렇게 율법주의적으로 판단하거나 심판하지 말아라 라는 뜻이예요. 왜? 머리는 너네 주님이니까. 그리스도니까. 왜 니가 머리 역할 하려고 그래. 그러니까 그 머리로도 선언하지마. 맹세하지마. 함부로 죄다 아니다 판단하지마.
잘 생각해 보세요 죄라는게 선악과 라는게 그게 뭔지를 가르쳐서 생명을 설명할려고 하는 거였다면 그게 뭐 애시당초의 죄입니까 그게? 여러분이 거기까지 당도하면 죄와 선이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함부로 남 판단 안 할 수 있다니까요. 자기들의 율법과 도덕 가지고, 윤리와 도덕 가지고. 하나님이 정하다 그러면 정한 거고, 하나님이 부정하다 그러면 부정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나이’ ‘나이’ ‘우’ ‘우’ 하면 되는 거예요. 네 진리네요. 네 아니네요. 그러면서 마지막에 뭐라고 그러는지 보세요.
(마태 5:37)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계를 벗어 나는게 뭐라고 그랬어요. 맹세해. 거짓 맹세해. 그걸 그대로 여기서 설명하는 거예요. 그 한계 넘어 가면, 범위에서 벗어나면 전부 악이야~그러는 거예요. 진리는 진리라고 해. 아닌건 아니라고 해. 라는거죠. 주님이 우리의 머리세요. 그 분이 옳다라고 하면 옳은 거예요. 그 분이 그르다 하시면 그르다라고 이야기 하면 되요. 우리는 그걸 판단하고 단죄하고 심판할 자격과 능력이 없어요. 그런데 율법주의는 자신이 머리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해요. 선악 판단의 주체가 되어서 선악을 분별하고 자신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추구하고 싶어 해요. 이건 아마 모든 아담들의 인지상정일거예요. 그런데 그게 뭐예요? 선악구조 속에서의 또 다른 죄예요. 내가 선이라고 모든 보편 인간이 선이라고 정의한 그거, 그게 옳은 거니까 ‘그래 인간들이 옳다고 판단했으면 그거 추구하자’ 가 선악과 먹은 거예요. 생명은 선악과의 울타리를 벗어 나는게 생명이라니까요. 주님은 그렇게 해서 열심을 부려 만들어 낸 것들 가져와서 하느님 잘했죠? 라고 갖다 받치면 내가 널 도무지 알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예요. 도무지 알지 못한다 가 뭐라고 그랬어요? 어 나 못 봤는데, 그가 죽을때까지 열심히 한거 하느님이 하나도 안 봤다는 얘기예요. 그렇게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어~집 팔아서 헌금하고 일년에 육개월을 선교지에 나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그걸 안 봤다니~ 그런데 하느님이 어 나 못 봤는데, 그러신다니까요. ‘에이도’ 라는 단어를 써서 ‘어 안 보였는데 내 눈에는’ 그래요 하느님이.
(야고 5:12) 12 나의 형제 여러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하늘을 두고도, 땅을 두고도, 그 밖의 무엇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십시오.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휘포크라시스’ 그게 위선이야~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 안하면 그게 위선이야~그러는 거예요. 그게 위선이야~ 그러니까 야고보가 산상수훈의 예수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한거죠. 그걸 그대로 갖다가 쓴거예요 함부로 선언하지마. 함부로 설교하지마. 진리를 알게 되면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처럼 보이지 않아요. 그냥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세상, ‘호코스모스’ 가 진리로 옷을 입게 되었을 때 그 껍데기는 사라지고 진리만 남아요. 심지어 예수도 사라지고 그 예수가 품었던 그리스도라는 진리만 남게 되요. 십자가 그거 그렇게 추억하지 않아도 되요. 집집마다 그거 그렇게 안 걸아 놔도 된대니까요. 그거 볼 때 마다 나치 하이 히틀러가 생각나가지고 그거 꺾어 놓은게 그거거든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이 모형으로 또 설명용 교본으로 들어서 썼던 것들, 이런 것들이 그냥 아무런 관심 꺼리가 안돼요. 진리가 없으면 나는 그냥 먼지야 하느님이 언제든지 발에서 떨어 버려도 할 말 없는 먼지 그게 죄인이지 뭐예요. 그런데 하느님이 나의 안에 진리를 넣어서 이렇게 아들 삼아 주셔서 난 그냥 찬양할 뿐이야. 뭐 이스라엘이 회복되던 말던 알아서 해~ 거기도 진리가 되는 놈이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마는 거고! 사람들은 몰라요 그냥 껍데기만 봐요. 그래서 이걸 꿈이라고 그러죠. 왜? 언제가 끝날 거니까 . 영원으로 존재할 거면 꿈이라고 안그러죠. 그런데 이 꿈도 뭔지를 몰라~ 헛맹세 하지 마세요. 거짓 증거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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