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8월 4일 화요일[(백)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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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8-04 | 조회수1,69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8월 4일 화요일 [(백)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은 1786년 프랑스 리옹의 근교에서 태어났다. 1815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시골 마을 아르스의 본당 사제로 활동하면서 겸손하고 충실한 목자로 존경받았다. 그의 고행과 성덕이 널리 알려지면서 여러 곳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는 정성을 다하여 영적 가르침과 고해성사를 베풀었다. 평생을 아르스에서 겸손하고 가난한 삶을 산 그에게 해마다 2만여 명이 고해성사를 받고자 찾아왔다고 전해진다. 1859년 선종한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를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시성하고, 4년 뒤에는 ‘본당 사제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제1독서 <네 허물이 커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 내가 야곱의 천막을 되돌려 주리라.> 30,1-2.12-15.18-22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에게 한 말을 모두 책에 적어라.” 너의 부상은 심하다. 너에게 새살이 돋지 않으리라. 잊어버리고 너를 찾지 않으리라. 너를 내리쳤으니 그것은 가혹한 훈계였다. 너의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컸기 때문이다. 네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고 소리치느냐? 네 죄악이 많고 허물이 커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 주고 그의 거처를 가엾이 여겨 궁궐도 제자리에 서게 하리라. 흥겨운 소리가 터져 나오리라. 그들의 수가 줄지 않고 그들이 멸시당하지 않으리라. 그 공동체는 내 앞에서 굳건해지며 모두 내가 벌하리라.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통치자가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도록 하여 나에게 다가오게 하리라. 다가오겠느냐?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 화답송 시편 102(101),16-18.19- 21.29와 22-23(◎ 17) 영광 속에 나타나시리이다. 세상 모든 임금이 당신 영광을 경외하리이다. 주님은 시온을 세우시고, 영광 속에 나타나시어, 헐벗은 이들의 기도를 굽어 들어주시고, 그들의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리라. ◎ 주님은 시온을 세우시고 영광 속에 나타나시리이다. 새로 창조될 백성이 주님을 찬양하리라. 주님이 드높은 성소에서 내려다보시고, 하늘에서 땅을 굽어보시리니, 포로의 신음을 들으시고, 죽음에 붙여진 이들을 풀어 주시리라. ◎ 주님은 시온을 세우시고 영광 속에 나타나시리이다. 살아가고, 그 후손은 당신 앞에 굳게 서 있으리이다.” 주님이 시온에서 당신 이름을, 예루살렘에서 당신 찬양을 전하시리라. 그때에 백성들과 나라들이, 주님을 섬기러 모여들리라. ◎ 주님은 시온을 세우시고 영광 속에 나타나시리이다. 복음 환호송 요한 1,49 참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복음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복음입니다. 14,22-36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시달리고 있었다.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주님, 저를구해주십시오.” 하고소리를질렀다.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그분을 알아보고 그 주변 모든 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병든 이들을 모두 그분께 데려왔다.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영성체송 마태 28,20 참조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오늘의 묵상 중국의 대표적인 역사가 사마천의 역사책 『사기』에 보면, 어떠한 명의라도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여섯 가지 불치병에 걸린 환자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환자가 교만하고 방자하여 내 병은 내가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몸을 가벼이 여기고 돈과 재물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는 음식을 적당히 가리지 못하는 사람이며, 네 번째는 음양의 평형이 깨져서 오장의 기가 안정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입니다. 다섯 번째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도저히 약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이며,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는 무당의 말만 믿고 의사를 믿지 못하는 환자입니다. 신탁은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종교적 상황을 묘사하면서, 이스라엘을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고 아무도 돌볼 수 없으며 정부들에게 잊힌 백성으로 소개합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이러한 상태에 놓이게 된 이유는 하느님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상처의 치유자로 나서실 것이라는 약속으로 신탁은 마무리됩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 회복되더라도 재발하여 불치병이 될 수 있음을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을 만드신 하느님보다 문자에 얽매여 조상들의 전통을 더 중시하는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들 때문입니다. 이 불치병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이 입 밖으로 내보낸 데서 비롯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그럴싸한 위선으로 ‘하느님께서 심으신 나무의 햇순’(이사 60,21 참조) 을 뿌리째 뽑힐 초목으로 모두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무장된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치유하시는 의사로 나서시더라도 우리가 거부하고 배척한다면 결국 죽음의 구덩이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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