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8월 13일[(녹)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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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8-13 | 조회수1,47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8월 13일 목요일 [(녹)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제1독서 <대낮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를 가거라.> 집안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다. 보는 앞에서 유배를 가거라. 떠나 다른 곳으로 유배를 가거라. 그들이 깨달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내어놓았다가, 유배를 떠나듯이 떠나라. 앞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나가는데, 이스라엘 집안을 위한 예표로 삼았다.” 대낮에 내어놓았다가, 짐을 어깨에 메고 나갔다.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집안인 이스라엘 집안이, 하고 너에게 묻지 않았느냐?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수장과 그 안에 있는 온 이스라엘 집안에 관한 것이다.’ ‘나는 여러분을 위한 예표입니다. 그들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어두울 때에 짐을 어깨에 메고, 뚫어 놓은 구멍으로 나갈 것이다. 않으려고 얼굴을 가릴 것이다.” 화답송 시편 78(77),56-57.58-59. 61-62(◎ 7ㄴ 참조) 하느님을 시험하고, 그분께 반항하며, 그분의 법을 지키지 않았네. 그들의 조상들처럼 등 돌려 배신하고, 뒤틀린 활처럼 어긋나 버렸네. ◎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우상을 세워 그분을 진노케 하였네. 하느님은 들으시고 격노하시어, 이스라엘을 아주 버리셨네. ◎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사로잡히게 하시고, 당신의 영광을 적의 손에 내주셨네. 당신 백성을 칼에 넘기시고, 당신 소유에게 격노하셨네. ◎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복음 환호송 시편 119(118),135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복음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복음입니다. 18,21─19,1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불러들여 말하였다.‘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영성체송 시편 147(146─147),12.14 참조 주님은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오늘의 묵상 예언자들 가운데서도 에제키엘은 상징적인 행위를 많이 보여 주는 이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거슬러 심판을 선언하는 예언자의 활동에서 우리는 이 행위들을 만납니다. 특히 오늘 독서는 에제키엘의 행위 가운데 하나인 ‘유배 짐’을 언급합니다. 것인지를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시면서, 그들이 다시 계약에 충실하도록 에제키엘을 ‘이스라엘 집안을 위한 예표’로 쓰십니다. 에제키엘은 이 불충의 결과 가운데 하나로, 유배 짐을 싸서 어두울 때 도시를 떠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그리고 그분과 맺은 계약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그 땅에서 내쫓기게 되리라는 암시를 시각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쉽게 이해하고 파악하게 하는 ‘무엇’입니다. 이스라엘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기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예표, 곧 행동으로 보일 예언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언자는 하느님께 명령을 받은 대로 반드시 실행해야 하고 이를 지켜본 이들은 변화하는 반응을 보여야만 합니다. 먼저 수도 없이 용서하라는 용서의 빈도를, 다음으로 하느님께 엄청난 용서를 받았으니 동료의 작은 허물을 용서하라는 용서의 당위성을 ‘매정한 종의 비유’로 알려 줍니다. 물론 이 비유에 나오는 임금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종은 매정한 인간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먼저 무한한 자비를 베푸셨으니, 우리도 형제들을 용서하며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변화도 없이 옹졸하기만 하면, 그 인생이 어두워질 무렵 유배 짐을 싸서 어깨에 메고 이 세상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결국 예표이든 비유이든 주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깨닫고 변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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