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9월 10일[(녹)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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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9-10 | 조회수1,816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9월 10일 목요일 [(녹)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약한 형제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말씀입니다. 8,1ㄷ-7.11-13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를 알아주십니다. 관련하여, 우리는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들이 있다 하지만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정말로 그렇게 알고 먹습니다. 양심이 더럽혀집니다. 지식 때문에 멸망하게 됩니다.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 죄를 짓고 약한 그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죄짓게 한다면, 나는 내 형제를 죄짓게 하지 않도록 차라리 고기를 영영 먹지 않겠습니다. 화답송 시편 139(138),1-3.13-14ㄱㄴ. 23-24(◎ 24ㄴ 참조) 살펴보시고 잘 아시나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은 저를 아시고, 멀리서도 제 생각 알아차리시나이다.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헤아리시니, 당신은 저의 길 모두 아시나이다. ◎ 주님,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어미 배 속에서 저를 엮으셨나이다. 오묘하게 지어 주신 이 몸,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당신 작품들은 놀랍기만 하옵니다. ◎ 주님,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제 마음을 알아주소서. 저를 꿰뚫어 보시고 제 생각을 알아주소서. 저의 길이 굽었는지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 주님,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복음 환호송 1요한 4,12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리라. 복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복음입니다. 6,27-38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자들에게 잘해 주고, 자들에게 축복하며, 위하여 기도하여라.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 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받을 것이다. 받을 것이다.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영성체송 시편 42(41),2-3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오늘의 묵상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어렵다고, 그래서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려면 상당한 노력과 깊은 신앙심이 있어야 한다고들 말하겠지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원수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복음 말씀의 실천이 어렵다고 합니다. 원수는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이가 내뱉는 몇 마디로 원수라 규정하고, 이웃의 불편한 행동 몇 가지로 ‘웬수’를 만들어 버리는 우리의 옹졸함이 상상의 원수를 매일같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막바지에서 원수를 사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우리가 때로는 타인을 너무나 차갑게 심판한다는 것을 전제하는데, 이를 기억해야 합니다. 서로 뜻이 다른 것을 두고 ‘틀렸다’ 말하고, 비판이라는 미명 아래 비난을 일삼고서, 그럼에도 나는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낯 뜨거운 언행을 밥 먹듯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우리 존재의 목적과 이유를 위한 것이지 타인의 잘잘못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롭게 되는 것, 나의 용서로 나의 삶이 사랑으로 풍요로워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에게 애당초 원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원수는 내 마음이 만든 우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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