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9월 23일 수요일[(백)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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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9-23 | 조회수1,46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9월 23일 수요일 [(백)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오상(五傷)의 비오 신부’로 널리 알려져 있는 비오 성인은 1887년 이탈리아의 피에트렐치나에서 태어났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1910년 사제가 된 그는 끊임없는 기도와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을 섬기며 살았다. 비오 신부는 1918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968년까지 50년 동안 예수님의 오상을 몸에 지닌 채 고통받았다. 곧, 그의 양손과 양발, 옆구리에 상흔이 생기고 피가 흘렀던 것이다. 이러한 비오 신부를 200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제1독서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이들에게 방패가 되신다. 보태지 마라. 그랬다가는 그분께서 너를 꾸짖으시고 너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멀리하여 주십시오.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말하게 될 것입니다.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화답송 시편 119(118),29.72.89.101. 104.163(◎ 105ㄱ 참조) 자비로이 당신 가르침을 베푸소서. ◎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이옵니다. 수천 냥 금은보다 제게는 값지옵니다. ◎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이옵니다. 하늘에 든든히 세워졌나이다. ◎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이옵니다. 온갖 악한 길에서 발길을 돌렸나이다. ◎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이옵니다. 거짓된 모든 길을 미워하나이다. ◎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이옵니다. 당신 가르침은 사랑하나이다. ◎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이옵니다. 복음 환호송 마르 1,15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복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복음입니다. 9,1-6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영성체송 마태 24,46-47 참조 보실 때에 깨어 있는 종! 주님은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기시리라. 오늘의 묵상 복음 선포와 치유 능력은 쌍을 이루고 함께 나아갑니다. 말하자면 복음 선포는 인문학적 소양이나 객관적 지식의 함양과는 결을 달리하고, 동시에 우리 삶 곳곳에서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기쁨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도피적 위로의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기우이기를 바라나 많은 신앙인이 성당이나 교회에 와서는 세상사 잊고 그저 하느님 안에 조용히 위로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사는 것이 팍팍하고 때로는 내려놓고 싶다는 뜻이겠지요. 세상의 질병을 고쳐 주어야 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긴박히 돌아가는 세상에서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홀로 베드로 광장에서 강복하시는 장면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력함과, 그럼에도 세상을 향하여 무엇이든 해 주시려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질병을 고쳐 주고 보듬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말하기 전에 오늘 복음 한 구절을 다시 묵상하려 합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말씀은 언뜻 보기에 무소유의 편안함을 의미하는 듯싶지만 실은 ‘현실주의’에 대한 과감한 저항입니다. 말할 수 있다는 현실에서 돈 한 푼 없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 현실을 우리는 내려놓고 비워 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은 치유됩니다. 더 쥐려고 경쟁하는 세상을 아무리 치유하고 위로한들 더 큰 질병이, 더 큰 바이러스가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질병의 고통은 가난한 이들에게 차곡차곡 쌓이고, 그로 말미암은 부는 사회 상층부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질병을 직접적이고 가시적으로 고쳐 주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가진 이들이 나눌 때 가능합니다. 복음 선포와 치유 능력은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실천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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