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聖정하상, 聖유진길님 순교하신 날 (순교일; 22일) |
정하상님은 정약종(丁若鐘)님의 둘째 아들로, 외국 선교사의 영입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상재상서」(上宰相書)를 지어 천주교 교리를 당당하게 변호하였던 주님의 참된 용사이다. 그는 범 라우렌시오(앵베르) 주교에게 신학생으로 뽑혀 라틴어와 신학 공부까지 하였으나 성품을 받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는 7세 때인 1801년 신유박해로 아버지가 순교하자 숙부인 정약용님의 집에 기거하다가 1813년 홀로 상경하여 교리를 배우고 교회 일을 도우며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하여 조신철(趙信喆), 유진길(劉進吉) 님등과 함께 9차례나 북경을 왕래하여 나 베드로(모방) 신부 등 네 분의 외국 신부들을 영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1839년 7월 모친 유소사 체칠리아(柳召史)님, 동생 정정혜 엘리사벳(丁情惠)님과 함께 체포된 정하상님은 곧 그가 쓴 「상재상서」를 대신에게 올렸는데
이 글은 한국 최초의 호교문이며, 그 뒤 홍콩에서 책으로 발간되어 중국에서도 널리 읽혔다. 9월 22일 그는 유진길님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45세에 참수되어 순교하셨다.
*주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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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종님의 둘째 아들로 엥베르 주교에게 뽑혀 사제 수업을 받기도 했으며
사제 영입을 위해 북경을 9차례 왕래하여
羅베드로 신부 등 네 분의 외국 선교사를 영입했고
아버지, 팔순 노모, 여동생까지 순교의 월계관을 받은 가정,
'상재상서'를 지어 대신들 앞에 당당히 호교론을 펼쳤고
살점이 떨어지고 다리 뼈가 튀어 나오는 처절한 고문을 당한 뒤에
45세에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 순교하신
聖 정하상 바오로 님이시여,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만을 따른 님을 기억하는 저희가
매사를 감사와 기쁨으로 헤쳐나갈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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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당시 정3품 당상 역관(當上譯官)의 높은 벼슬에 있었던 유진길님은 서울의 유명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특히 철학과 종교 문제에 관심을 갖고 10년 동안 불교와 도교를 깊이 연구하였으나 진리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던 중, 1823년 우연히 「천주실의」의 일부분을 구해 읽고는 사방에 수소문한 끝에 천주교 진리를 터득하고 곧 입교하였다. 1824년 동지사(冬至使)의 수석 역관으로 북경에 가서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 뒤 유진길님은 북경 교회와 연락을 담당하며 8차례에 걸쳐 북경을 왕래하면서 정하상님, 조신철님과 함께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하였다. 마침내는 교황에게 성직자의 파견을 간청하는 편지를 북경 주교에게 전달하였고 그 결과 유방제(劉方濟) 신부, 나(모방) 신부, 정(샤스탕) 신부, 범(앵베르) 주교 등이 입국하게 되었다. 그는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7월 17일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주교와 신부들의 은신처를 대라며 매우 가혹한 형벌을 받았으나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9월 22일 정하상니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4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셨다.
*주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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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갈구하여 10여년 간 불교를 연구하던 차에
우연히 '천주실의'를 접한 후 곧 입교하여
동지사 수석 역관으로서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았으며 정하상 님들과 함께 사제 영입을 위해 북경을 6차례 왕래하며
유방제신부, 나 모방신부, 정 샤스탕신부, 범 앵베르주교 등의 입국에 성공하였고 13세의 아들마저 아버지를 따라 함께 순교하는 영광을 누린
성유진길 아우구스티노 님이시여
가정과 이웃을 성화하는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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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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