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9월 24일[(녹)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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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9-24 | 조회수1,55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9월 24일 목요일 [(녹)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제1독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그곳으로 서둘러 간다. 돌고 돌며 가지만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바다는 가득 차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드는 그곳으로 계속 흘러든다.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못한다.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 않듯장차 일어날 일도 마찬가지. 그 일도 기억하지 않으리니 그 후에 일어나는 일도 매한가지다. 화답송 시편 90(89),3-4.5-6. 12-13.14와 17(◎ 1)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당신은 말씀하시나이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그들은 아침에 든 선잠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 같사옵니다. 아침에 돋아나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리나이다. ◎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언제까지리이까?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소서. ◎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복음 환호송 요한 14,6 참조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복음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7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하는가 하면,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만나 보려고 하였다. 영성체송 시편 119(118),4-5 참조 지키라 하셨나이다. 당신 법령을 지키도록 저의 길을 굳건하게 하소서.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예언자이셨나 봅니다.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꽤나 유명하셨나 봅니다.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 이천 년 동안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무성하였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삶의 처지에서 예수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때로는 거부하며 내친 결과가 예수님에 관한 무성한 소문으로 전해지고 또 전해졌겠지요. 소문을 다 믿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소문의 가치를 애써 무시할 이유도 없습니다. 어찌 되었거나 소문을 통하여 교회는 지금까지 제 모습을 유지하고 다듬어져 왔으니까요. 불안해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헤로데가 예수님을 만나 보고 싶어 한 것은 다른 뜻, 다른 권력, 다른 유명세를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죽인 헤로데가, 새로운 가르침을 얻어 새롭게 거듭나고자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한 것은 분명 아닙니다. 헤로데의 호기심은 권력에 대한 애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당황하였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잘못이었음이, 그 잘못이 드러날까 불안했을 터이지요. 헤로데의 모습이 저의 일상 모습인 것 같아 헤로데의 마음에 한참이나 머물며 이 묵상 글을 적고 있습니다. 해석들에도 교회는 지금껏 여유로운 의젓함으로 살아왔습니다. 잘못과 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잘못과 흠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오로지 예수님의 자비만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소문이 어떻든 예수님을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예수님 앞에 솔직히 서 있는가?’ 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지요. 오늘도 여전히 끝기도 때 저는 하루 동안 저지른 잘못으로 아파하고 용서를 빌겠지요. 다만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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