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바로알기/ 문둥병(나병)자의 이야기 (루가복음 5:12-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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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20-10-01 | 조회수1,86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성경바로알기 2020.10.01. 문둥병(나병)자의 이야기 (루가복음 5:12-15) 12 예수께서 어느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이 나병(문둥병, 부정한자)으로 문드러진 사람 하나가 나타났다. 그는 예수를 보자 땅에 엎드려 간청하며 '주님, 주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 주실 수 있으십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그렇게 해 주마. 깨끗하게되어라' 하시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14 예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말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네 몸이 깨끗해진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15 그러나 예수의 소문은 더욱 더 널리 퍼져서 예수의 말씀을 듣거나 병을 고치려고 사람들이 사방에서 떼지어 왔다. 예수님 앞에 갑자기 문둥병(나병) 걸린 사람이 나타나죠? 여기서 문둥병 걸린 사람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 ‘레프라’는 ‘부정(不淨)한’, 모든 부정한 것을 총칭하는 단어예요. 그런데 문둥병(나병)자도 이렇게 불렸기 때문에, 그냥 성경의 번역자들이 ‘나병’라고 한 거죠. 문둥병(나병)자라고 하자고요. 부정한 자! 온 몸에 문둥병(나병)이 들렸다는 건, ‘부정으로 가득 찬’이라는 뜻이에요. ‘부정으로 꽉 찬!’ 그러니까 ‘죄인!’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선악과 입에 문 죄인! 그가 예수 앞에 나타났어요. 부정함이 가득 찬 죄인이! 예수를 보았다 그래요. 여기서도 ‘에이돈’이에요. ‘에이도.’ 표피적으로만 본 거예요. 어떻게 봤어요? ‘내 부정함을, 내 문둥병을, 내 죄를 없애실 수 있는 분!’ ‘그거 잘 본 거 아닌가?’ 혹시 속으로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내 부정함을, 내 죄를, 내 문둥병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분! 메시야를 이렇게 인식하는 사람! 주인공은 역시 ‘나’예요. 이걸 잘 분별해야 돼요. 예수님은 나의 죄! 자의 부정함! 나의 문둥병을 없애러 오신 분이 아니라, 나는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그냥 문둥병자, 부정으로 가득 찬 자, 똥, 흙, 그 존재로, 전혀 살 존재가 못 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 분이 나의 죄를 사해주러 오신 분! 이 인식은 하늘과 땅만큼 다른 거예요. 여러분 그 부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 주님을 보고 간청해요. 여기서 ‘간청’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프레이(pray), 간구’했다는 뜻이에요. 기도했어요. 자 성도가 하는 건 다 하고 있는 거예요. 시몬 베드로도! 문둥병 환자도! 기도했어요. 뭐? 내 죄, 내 부정함 없애달라고요. 왜? 나는 이런 것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주인공은 누구? ‘나’란 말예요. ‘내 죄를 없애 주세요!’의 주체가 ‘나’면 그것도 죄예요. 그랬더니 문둥병자에게 예수님이 손을 대셨다. 그래요. 여기서 ‘엑테이너, 손을 뻗다’ 그리고 ‘케일, 손’이라는 단어가 다, 여성 단수예요. 만약에 손을 뻗으신 분이 예수님이고, 그 손이 예수님의 손이었으면, 그게 남성 단수로 쓰여야 돼요. 그런데 여성 단수라는 건, 손을 뻗게 한 분은 예수님이에요. 주체예요. 주어인데, 자기의 손을 뻗은 존재는, 문둥병 환자예요. 문둥병 환자가 여성으로 기록이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여성 단수로 기록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야 맞죠. 당연히. 여러분 죄인의 죄! 부정함이 없어지게 될 때, 제물에게, 죄인이 안수를 하지, 제물이 누워 있다가 죄인이 오면, 안수하는 거 보셨어요? 양이, 염소가, 누워 있다가, 곧 잡혀 죽어야 할 제물이, 죄인에게 안수하는 거 보셨나요? 아뇨. 죄인이 자기 죄를 제물에게 안수하여 전가(轉嫁)하는 거예요. 이 방식이 맞는 거예요. 그리고 제물이 죽는 거예요. 부정함을 다 먹어버리고! 똥! 오병이어를 먹이 버리고 죽어버리는 거예요. 제물이! 그러니까 이건 한글성경(공동번역, 가톨릭성경, 개역성경)이 오역(誤譯)을 해 놓은 거예요.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고칠 때도 그랬고, 혈루병 앓던 여인은 예수님에게 먼저 손을 대요. 원어로 보면 손을 대어, 그 부정함을 빨리는 거요. 예수님에게! 이걸 오해해서, 오늘날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사람들! 사역자(봉사자)라는 사람들이 연말연시만 되면 안수하는 거예요. 사람들 줄 세워놓고 가족 단위로 안수하는 거예요. 왜? 성경이 이렇게 예수님이 손을 대어서 뭘 고쳤다는 게 나오니까. 천만의 말씀. 그건 요, 지금목자의 죄를, 교인들에게 마구 전가시키고 있는 거와 똑같은 거예요. 거꾸로 알고 있는 거요. 여성이란 말예요. 아무튼 부정으로 가득 찬 죄인의 손이, 예수님의 손에 맞닿았다. 그런 거요. 맞닿게 되니까, 이 문둥병이, 나병이 예수님께 쭉 빨려 들어간 거예요. 부정함이 예수님께 쭉 빨려 들어간 거예요. 그리고는 이 사람이 나았어요. 그런데 기뻤어요. 나았어요. 기적이 일어났어요. 물고기가 잡힌 거예요. 시몬 베드로의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니까. 기적(奇蹟)이 일어났어요. 말씀이신 그 분이 뭔가 행했더니, 기적이 일어났어요. 부정함이 사라졌어요. 나병이 없어졌다니까요. 기뻐 뛰겠죠. 여기에 보면 ‘프로소폰’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 문둥병 환자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건, ‘프로소폰!’ 자기의 나병! 자기의 죄예요. 예수가 아니었어요. 이걸 어떻게 해서든지 고쳐야 된다. 이거! 여기에 머물러 있었어요. 그래서 ‘프로소폰’ 거기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거예요. 낫긴 나았는데, 도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이게 낫게 된 건지, 그리고 자기가 갖고 있던 그 나병! 그 부정함이 얼마나 무섭고 엄청난 것이었는지는 모르는 거예요. 모르고 나은 것에 대해서만 찬양(讚揚)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쩔 줄을 모르는 거예요. 이 사람이 예수 앞에 예배 안 드렸겠어요? 찬송을 안 했겠습니까? 기도 안 했겠습니까? 뭐라도 있으면 사례라도 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그런 식으로 하는 헌금! 순종! 헌신! 선교! 예배는 다 아니라는 거요. 네가 주인공이 되어서, 너에게 뭘 해준, 그게 기뻐서, 여전히 네가 주인공이면서, 하느님께 뭘 한다고 하는 건, 그건 우상! 역시 너에게 뭔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게 기뻐서 하는 거니까. 그건 가짜 엎드림, 가짜 순종, 가짜 ‘솨하’, 가짜 ‘프로스큐네’예요. 가짜 예배(禮拜)라는 그런 이야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이 너무 너무 말하고 싶은 거예요. ‘죄가 사해졌어! 부정함이 사라졌어! 그래서 나가서 전도하고 싶어졌어요. 야, 내가 이렇게 깨끗해졌어. 사해졌어.’ 그런데 어떻게 그리고 네가 가졌던 게 뭔데? 몰라요. 그런데 일단 내가 나았어. 내 삶에 기적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전도하고 싶어. 예수님이 뭐라는 지 보세요. 14 예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말고(‘파랑겔론, 신탁하다.’ 경계하다) 다만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네 몸이 깨끗해진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이 ‘파랑겔론’은 청자(聽者)의 책임과 의무를 포함하는 단어예요.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요걸 의역(意譯)을 하면, 이래요. ‘너에게 일어난 일을 아무에게도, 또 어떤 것도, 하나도 이야기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하나도 이야기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노바디 나싱(Nobody, Nothing)이거든요. 하나도 이야기하지 말아라! ‘그게 복음이다!’ 이런 뜻이에요. 예수께서 ‘파랑겔로,’ 신의 말씀으로 말씀하셨어요. 신의 말씀은 복음이에요. 복음을 말씀하셨는데, 뭐라고 하셨느냐하면, ‘네가 본 것을, 네 이해의 수준에서, 누구에게 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마라! 이게 복음이다.’ 이런 뜻이에요.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바로 위에서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곡해해서, 말씀을 곡해해서, 엉뚱한 예배와 순종이 모습을 보여주었잖아요? 그리고 엉터리로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했단 말예요. 그걸 염두에 두고, 이 치유된 문둥병자의 이야기를 이해해야 된다 말예요. 이 문둥병자는 자신의 ‘프로소폰’, 문둥병, 나병, 자기의 죄에만 관심이 있었지, 그걸 용서해 주시는 그 분의 사랑과 은혜와 그 분의 능력과, 그리고 내가 가진 죄의 이 깊이와 더러움과 본질을 모르는 거예요. 그냥 지금 기쁘기만 한 거예요. 이러면 안 된다가 아니라, 우리가 그런 수준과 과정을 통과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데 끝까지 이렇게 가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예요. 간절히 기도를 했어요. 그랬더니 부정함이 떠나 가버렸어요. 그러니까 말씀이신 예수를 어떻게 이해했겠어요? ‘나’라는 주체, 주인공의 죄를 없애주기 위해서 오신, 능력자! 조력자! 메시야! 그리스도! 요렇게. 여전히 나를 가운데 두고, 하느님은 아웃사이더로 배치를 해 놓은 거요. 요렇게! 그대로 나와서 이야기하면 안 된데요. 그래서 함부로 선교 가면 안 돼요. 선교는 가서 예수가 전해져야 되는 거예요. 말씀이 전해져야 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그 상태에서 ‘네가 무슨 말을 하던 그건 복음이 아니다.’라고 지금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말하지 마라!’ 그래요. 그럼 뭐 어떻게 하라는 거요? 바로 뒤에, ‘알라, 그러나’라는 단어가 있어요. 그리고 다음 문장에 ‘이건 하면 안 되지만, 해야 하는 게 있어. 그래서 ’알라, 그러나‘예요. 해야 하는 게 있어. 반드시! 뭐라 그래요? 다만 사제(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네 몸이 깨끗해진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여라' 이거 제사지내라는 거죠? 이게 말이 돼요? 말을 하려 했더니, 복음을 전하려 했던. ‘야, 야, 그거 하지 마, 그거 하지 마. 하지 말고 가서 제사지내!’ 이런 거요. 지금 이해가 되셨어요? ‘말하지 마, 말하지 마. 제사지내! 가서.’ 그 말이잖아요. 이게요. 정확히 직역을 하면, ‘가서 모세가 정리해 놓은 그 율법대로,’ 여기 예물, 제물이란 단어 없어요. ‘아우투스’ 너 자신이란 말은 있어요. ‘너 자신으로 네 구속됨을 쇼우(show), 보여라!’ 다시 한 번요. ‘너 자신으로, 말은 하지 마! 말하지 말고, 너 자신으로, 모세가 정리해 놓은 율법대로, 네 구속함을 쇼우(show), 보여라’예요. 무슨 말이냐 하면 ‘넌 아직 복음이 뭔지 모르니까. 네 구원이 뭔지 모르니까, 내가 네 삶을 갖고, 그의 인생을 차압하는 거요. 시몬의 인생을 차압한 것처럼! 차압해서 쇼우, 보이겠다는 거요. 뭐를? 너 자신을 갖고 구속함! 정결함이 무엇인지를 모세가 정리해 놓은 그 규례, 율법대로 차례차례 보이겠다는 거요. 어떻게? 레위기로 가 보면, 털 깎고, 옷 벗기고, 완전히 그냥 죽여 버리겠다는 뜻이에요. (레위기 14:7-10) 7 그 핏물을 악성 피부병(문둥병)이 나아 정화 받을 사람에게 일곱 번 뿌려 주며 정하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살아 있는 새를 들로 날려 보낸다. 8 이렇게 정하다고 선언 받은 사람은 옷을 빨아 입고 몸의 털을 모두 깎고 목욕을 하여야 한다. 그는 정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되면 진지에 들어 갈 수 있기는 하지만 자기 천막 밖에서 칠 일간 더 머물러 있어야 한다. 9 칠 일째 되는 날에 그는 머리 털과 수염과 눈썹까지 몸의 털을 모두 깎는다. 이렇게 온 몸의 털을 다 깎고 나서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어야 한다. 그는 정하게 된 것이다. 10 팔 일째 되는 날, 흠이 없는 어린 수양 두 마리와 흠이 없는 일 년 된 암양 한 마리와 곡식예물로 바칠 고운 밀가루 십분의 삼 에바를 기름에 반죽한 것과 기름 한 록을 가져와야 한다. 어린 양과 기름! 성령!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등장하는데, ‘팔(8) 일’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지금 모세가 차례대로 정리해 놓은 게 뭐냐 하면, 칠 일과 팔 일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해 놓고 있죠? 칠이 뭐라고 했어요? 창조의 수! 안식은 이렇게 완료되는 거야를 보여주는 게, 창세기의 첫째 날부터 일곱 째 날, 안식일까지의 일이었잖아요? 요게 묵시 속에서 하느님나라가 완료가 되고, 완성이 되는 그 모습이란 말예요. 칠(7)! 그런데 이게 역사 속으로 내려오면, 인간은 요 칠(7)에다가 하느님이 완료하신 안식에다, 자기들의 행위와 율법을 보태려고 하죠? 그래서 이 칠을 똥으로 범벅 시켜 놓는다니까요. 하느님의 것을! 율법이 내려오면, 예수라는 율법이 내려오면, 예수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이걸 똥! 율법으로 받아서, 이걸 완전히 죽여 버리고, 뭉게버리는 게 인간인 것처럼! 안식, 칠,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내려오면, 선약과 입에 문 아담들에게는 반드시, 이건 우리가 기여해서 완료해야 할 어떤 것으로, 오병이어! 율법! 똥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거요. 거기에 언약이 가입해야 되죠? 언약이 뭐예요. ‘어린양의 피로, 아들의 피로, 점도 없고 흠도 없게 만들어내는 거’예요. 언약(言約)! (에페1,4)그래서 역사 속에서 이 칠이 설명되기 위해서는, 이 칠을 인간들의 똥으로 만들어 놓아서, 이 똥이 되어, 예수가 죽고, 이게 예수의 죽음! 피에 의해 완성이 됐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 팔 일째 살아나서, 이제 이게 예수의 의해 완료되었다는 걸 알겠어? 라고. 팔 일, 안식 후 첫날, 구 일, 십 일은 없어요. 성경에. 팔 일이에요. 이 영원한 팔 일이 어떻게 완료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게, 칠 일, 팔 일이란 말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이 팔 일, 주일날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안식을 여기에서 경험하는 거란 말이에요. ‘아, 예수에 의해서, 어린 양에 의해서, 이 안식, 칠은 완료되는 거구나. 그런데 우리가 자꾸 그것을 똥으로 만들어 놓으니까, 예수가 죽어서, 팔 일째, 뭐요? 어린 양과 성령! 기름을 증거물로 내놓으면서, 이렇게 해서 하느님나라는 완료되는 거야!’라고 보이는 게, 문둥병자 이야기란 말예요. 자 요 이야기를, 문둥병자 네 삶을 통하여, 내가 쇼우(show), 보이겠다는 거요. 사도 바오로가 너희 삶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그러잖아요? 그 제사가, 어린 양의 삶이 여러분 안에 나타난다니까요. 그래서 그 광야에, 세례요한이 참수되어 죽은 거고, 그 광야에 오병이어를 먹은 그 사람들이 ‘아, 우리가 내놓는 건 다 똥이구나!’ 이걸 폭로를 당하는 거고, 이 광야에 여러분이 ‘저는 죄인 중에죄인 맞습니다.’라는 이 고백을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지금. 그게 여러분의 인생이라니까요. 다른 거 없어요. 하느님은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내겠다 그랬어요. 반드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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