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10월 5일[(녹)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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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10-05 | 조회수1,66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10월 5일 월요일 [(녹)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제1독서 <복음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말씀입니다. 1,6-12 형제 여러분, 6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을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을 교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이제 내가 다시 한번 말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까? 맞추려고 하는 것이라면, 종이 아닐 것입니다. 분명히 밝혀 둡니다.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1(110),1ㄴㄷㄹ-2.7-8.9와 10ㄷ(◎ 5ㄴ 참조) 올곧은 이들의 모임, 그 집회에서, 내 마음 다하여 찬송하리라. 주님이 하신 일들 크기도 하여라. 그 일 좋아하는 이들이 모두 깨치네. ◎ 주님은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신다. 진실하고 공정하네. 그 계명들은 모두 참되고, 진실하고 바르게 이루어져, 영원무궁토록 견고하네. ◎ 주님은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신다. 당신 계약을 영원히 세우셨네. 그 이름 거룩하고 경외로우시다. 주님 찬양 영원히 이어지네. ◎ 주님은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신다. 복음 환호송 요한 13,34 참조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복음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복음입니다. 10,25-37 그때에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영성체송 애가 3,25 영혼에게 주님은 좋으신 분. 오늘의 묵상 율법 교사가 예수님과 이웃 사랑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이렇게 묻습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당시 유다인들은 이웃의 범주를 동족으로 제한하였습니다. 다만 이방인이라도 이스라엘 땅에서 살고 있다면 이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레위 19,18.34 참조)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율법 교사의 질문에는,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인과, 갈등 관계에 있는 사마리아인을 이웃의 범주에 넣지 말아야 하지 않겠냐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않는 죄인들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단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요한 7,49 참조). 그러므로 그가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질문을 하며 대화를 이어간 것은, 그동안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친구로 지내신 것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대답은 하지 않으시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비유 끝에 율법 교사에게 되물으십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여기서 율법 교사의 질문과 예수님의 질문을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율법 교사의 질문이 ‘이웃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예수님의 질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사랑해야 할 이웃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말에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라도 먼저 자신이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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