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10월 17일 토요일[(홍)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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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10-17 | 조회수1,64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10월 17일 토요일 [(홍)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이냐시오 성인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현재는 터키의 안타키아)에서 태어나 그곳의 주교가 되었다. 요한 사도의 제자였다고도 하는 그는 초대 교회의 중요한 지역이었던 안티오키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110년 무렵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이냐시오 주교는 안티오키아에서 로마로 압송되는 도중 들르는 곳마다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 편지들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초대 교회의 신앙생활에 관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만물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그분의 몸인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말씀입니다. 1,15-23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을 전해 듣고, 기억하며 여러분 때문에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의 하느님,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화답송 시편 8,2와 3ㄷㄹ.4-5.6-7ㄱ(◎ 7ㄱ 참조) 아드님이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하늘 위에 당신 영광 높사옵니다. 당신은 아기와 젖먹이들의 찬양으로, 요새를 지으셨나이다. ◎ 당신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을 아드님이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바라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 ◎ 당신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을 아드님이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당신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 당신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을 아드님이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복음 환호송 요한 15,26.27 참조 나를 증언하시고 너희도 나를 증언하리라. 복음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12,8-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영성체송 나는 그리스도의 밀알이다. 짐승들의 이빨에 가루가 되어 깨끗한 빵이 되리라.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성령을 보호자(‘파라클레토스’)라고 부르십니다(14,16 참조). 우리말 『성경』에서는 ‘보호자’로 번역하였는데, 이 말은 본디 법정 용어입니다. 죄를 문책하는 검사와 맞서 죄인 옆에서 그를 대변하는 변호사를 일컫는 용어였습니다.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변호인이 되어 주시어 우리가 세상의 법정에서 당당하게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비단 지상의 법정만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심판대에 우리가 서 있을 때도 성령께서는 우리의 변호인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심판받지 않도록,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로 용서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대변해 주시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모독한다면 우리 스스로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심판대에 홀로 남아 용서받기를 거부하는 꼴을 자초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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