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11월 8일[(녹)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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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11-08 | 조회수1,20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11월 8일 주일 [(녹)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평신도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으로서,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크게 부각하면서, 평신도를 통하여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지금은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의 결성과 더불어 해마다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지내기로 하였다.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직의 사명을 거듭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뒤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연중 마지막 전 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하면서 2017년부터 한 주 앞당겨 지내고 있다. 제1독서 <지혜를 찾는 이들은 그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발견할 수 있다.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자체가 완전한 예지다.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 화답송 시편 63(62),2.3-4.5-6.7-8 (◎ 2ㄷ 참조) 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저는 새벽부터 당신을 찾나이다. 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은 당신을 애타게 그리나이다. ◎ 주님, 저의 하느님, 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성소에서 당신을 바라보나이다. 당신 자애가 생명보다 낫기에, 제 입술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 주님, 저의 하느님, 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당신 이름 부르며 두 손 높이 올리오리다. 제 영혼이 기름진 음식으로 배불러, 제 입술이 환호하며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 주님, 저의 하느님, 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온밤 지새우며 당신을 묵상하나이다. 정녕 당신은 저를 도우셨으니, 당신 날개 그늘에서 환호하나이다. ◎ 주님, 저의 하느님, 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1서 말씀입니다. 4,13-18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근거로 이 말을 합니다.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않을 것입니다.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서로 격려하십시오. 복음 환호송 마태 24,42.44 참조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오리라.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복음입니다. 25,1-13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다섯은 슬기로웠다.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사이에 신랑이 왔다.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말한다.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영성체송 시편 23(22),1-2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오늘의 묵상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힙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문 앞에 서서 문을 열어 달라고 청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말씀은 다소 냉정하게 들립니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비로운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간청하는 어리석은 처녀들에게 주인은 문을 열어 줄 법하지만 그리하지 않습니다. 유다교에서 ‘닫힌 문’은 놓쳐 버린 기회를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마지막 때에, 마지막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의 비유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준비가 필요하며 그 준비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보여 주는 것처럼 등을 밝힐 수 있는 기름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누구에게서 받을 수 있거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말을 말하는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이 열 처녀의 비유는 마지막 때가 아닌 지금의 삶에 관심을 두게 만듭니다. 지금이 혼인 잔치를 위한 기름을 준비할 때입니다. 현재의 삶에 따라 슬기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도 될 수 있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지금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유다교의 ‘닫힌 문’의 의미를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할 수 있고 여전히 우리의 삶 안에서 종말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수많은 기회가 있음에도 그것을 잡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문이 닫히기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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