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11월 19일[(녹)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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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11-19 | 조회수1,51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11월 19일 목요일 [(녹)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어린양은 살해되시고 자신의 피로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셨습니다.> 말씀입니다. 5,1-10 계신 분의 오른손에,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봉인된 것이었습니다. 천사 하나가 큰 소리로, 펴기에 합당한 자 누구인가?” 하고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땅 아래에도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들여다보기에 합당하다고 인정된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슬피 울었습니다.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 로들 사이에,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눈이 일곱이셨습니다.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두루마리를 받으셨습니다.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또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봉인을 뜯기에 합당하십니다.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되게 하셨으니 그들이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화답송 시편 149,1ㄴㄷ-2.3-4.5-6ㄱ과 9ㄴ (◎ 묵시 5,10 참조)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네. 새로운 노래.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 주님은 우리가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네.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 주님은 우리가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네.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 주님은 우리가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네. 복음 환호송 시편 95(94),7.8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복음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 복음입니다. 19,41-44 가까이 이르시어 도성을 보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오늘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영성체송 시편 73(72),28 주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으리이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 내용은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다음에 나옵니다. 제자들과 군중은 임금의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아들이며 환호합니다. 그런데 환호하는 군중과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며 우셨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군중과 예수님의 모습이 대조적입니다. 로마에 의하여 파괴됩니다. 예수님의 예고는 그대로 이루어졌고 복음서는 예루살렘의 파괴를 매우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전하시는 말씀은 예언자들의 선포를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예레미야 예언자는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며 하느님의 슬픔을 표현합니다. 예레 9,1; 13,17; 14,17 참조).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이 표현은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이름을 암시합니다. 예루살렘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그 이름에는 ‘평화’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안에서 예루살렘은 그다지 평화롭지 못하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신앙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곳이며, 사도들이 부활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시작한 곳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환호하던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예고대로 파괴되고, 아픔을 간직한 곳은 기쁨을 선포하는 곳으로 변합니다.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 삶에 때로는 기쁨이 있고, 그 안에서 때로는 절망을 경험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하느님께서는 희망을 통하여 구원을 향한 여정을 이끌어 가십니다. 지금도 하느님의 구원 업적은 우리 안에서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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