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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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11-20 | 조회수1,86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하느님 나라는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이 세상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엿볼 수 있다. 반찬을 얹어주는 어머니의 다정한 눈길에서, 이웃의 웃음에서, 정직한 땀방울에서, 덤을 얹어주는 상인의 넉넉한 손끝에서, 위장 취업한 신부님의 미담에서, 부드러운 입맞춤에서, 기도손에서. 일상 안에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전부 볼 수 있거나 지속적으로 느낄 수는 없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다. 온 존재를 기울여 내면의 자기에게 다가갈 때, 만나는 모든 관계 안에서 ‘영원한 분의 옷자락’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누구도 그분을 직접 볼 수는 없기에 그분의 ‘옷자락’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정성을 다하여 진솔하게 만나는 모든 관계 안에서 하느님 또는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다. 자취를 보게 되는 그러한 찰나를 일컬어 이라 했다. 하느님 나라는 번개처럼 모습을 보였다가 사라지고 마는데, 인간 존재의 한계 때문이라고 한다. 머물 수 없고, 어떤 순간도 영원히 지속시킬 수 없는 인간의 운명, 그것을 일컬어 그는 ‘숭고한 우수’라 했다. 우수가 서린 인간의 운명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일까? 바꾸어 주실 분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머물 수 있는 복된 날이 바로 ‘종말’이다. 하느님 나라가 통째로 도래한다는 종말, 완성된다는 종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기다려야 할 날이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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