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3. 두 번째 파스카 축제(민수 9,1-14)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그 이듬해 첫째 달, 주님께서 시나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정해진 때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야 한다. 너희는 정해진 때, 곧 이달 열나흗날 저녁 어스름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야 한다. 관련된 모든 규정과 법규에 따라 그것을 지내야 한다.” 여기서 어스름은 탈무드나 바리사이들의 견해로는 해가 기운 때부터 질 때까지의 시간을, 사마리아인들에 따르면 해가 졌을 때부터 밤까지의 시간을 가리킨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파스카 축제를 지내라고 일렀다. 그래서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서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 어스름에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그런데 사람의 주검에 몸이 닿아 부정하게 되어, 그날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 그들이 모세와 아론 앞으로 다가와 말하였다. “우리가 사람의 주검에 몸이 닿아 부정하게 되기는 하였지만,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우리만 떨어져서 정해진 때에 주님께 예물을 바치지 못할 까닭이 어디 있습니까?”

모세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기다려라. 주님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명령하시는지 들어 보아야겠다.” 당시만 해도 사제계 문헌에서의 법규가 도입되는 통상적인 방식을 보게 된다.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모세가 주님께서 계시하신 해답을 내놓는다. 특별한 법규를 이야기체로 서술하는 형식은 이야기들이 법규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며, 법규들은 이야기에 원칙을 제공한다. 이런 방식은 민수기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주라고 이르신 내용이다. “너희와 너희 후손들 가운데 누가 주검에 닿아 부정하게 되거나, 먼 길을 나선다 해도,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를 지내야 한다. 이런 이들은 둘째 달 열나흗날 저녁 어스름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라.” 사실 문제가 된 것은 사람의 주검에 몸이 닿아 부정하게 되어, 그날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한 한 가지 경우인데, 여기에서는 두 가지가 제시된다. 파스카 축제는 거를 수 없는 근본 축제로서, 어떠한 경우에서건 정해진 때에 파스카를 지내지 못하였으면, 다음 달에라도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계속 이르셨다.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파스카 제물을 먹어라.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되고, 뼈를 부러뜨려서도 안 된다. 파스카 축제의 모든 규정에 따라 그것을 지내야 한다. 그러나 정결한 사람이나 길을 나서지 않은 사람이 파스카 축제를 거르고 지내지 않으면, 그는 자기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이다. 정해진 때에 주님에게 예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 죗값을 지는 것이다. 너희와 함께 사는 이방인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자 하면, 파스카 규정과 법규에 따라 지내야 한다. 이방인이든 본토인이든 너희에게 규정은 한 가지뿐이다.”

사실 ’파스카‘라는 이 말은 히브리 말로는 ’페사흐‘, 아람 말로는 ’파스하‘이고, 이것이 그리스 말에서는 파스카로 음역된다. 그러나 이 낱말의 기원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일반적으로 ’한쪽 발로 뛰어넘다, 건너가다, 넘어가다‘의 히브리 말 동사 ’파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 게 지배적이다. 아무튼 파스카 축제는 이미 이스라엘 이전부터 있었던 유목민들의 축제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축제는 이스라엘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유목민들의 단순한 연례 축제가 이스라엘에서는 이집트에서 탈출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념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이 파스카 전례에 대해서, 하느님께서는 이날이야말로 이집트를 탈출한 ’기념일‘로 선언한다. 이 말은 단순히 머리로 기억하거나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을 떠올리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기념은 구원을 경축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구원을 체험하는 것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구원된 사실을 경축하는 동안,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신 구원이 당신 백성에게 새롭게 이루어진다.

성막을 세우던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언판을 모신 천막을 덮었다.[계속]

[참조] : 이어서 ‘14. 광야 길을 인도하는 구름‘이 소개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