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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미사 강론]새 추기경들과 함께 하는 감사 봉헌[2020년 11월 29일 주일(대림 제1주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03 조회수1,332 추천수0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3.index.html#homilies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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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201129일 주일(대림 제1주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이사야서 63,16-17.19ㄷㄹ; 64,2-7

화답송 : 시편 80(79),2ㄱㄷㄹ과 3ㄴㄷ.15-16.18-19(◎ 4)

2독서 : 코린토 11,3-9

복음 : 마르코 복음 13,33-37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1916&gomonth=2020-11-29&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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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추기경들과 함께 하는 감사 봉헌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당

2020 1129일 대림 제1주일

 

오늘의 말씀은 대림절을 위한 두 개의 단어를 제시합니다. 가까이 계심과 깨어 있음. 하느님의 가까이 계심과 우리들의 깨어 있음.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가까이 계시다고 말합니다. 한편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분께서 돌아 오실 것을 고대하면서 깨어 있으라고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가까이 계심. 이사야는 하느님께 인간적으로 이렇게 말씀 드리면서 시작합니다. “주님, 당신만이 저희 아버지시고”(이사야서 63,16). “당신 아닌 다른 신이 자기를 신뢰하는 이들을 위하여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아무도 들어 보지 못하였고”(이사야서 64,3 참조). 우리는 신명기의 말씀이 상기됩니다. “누가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겠는가 (신명기 4,7 참조). 대림절은 우리 가운데에 사시려고 내려오신 하느님의 가까이 계심을 기억하는 시기입니다. 예언자는 계속해서 하느님께 우리에게 한번 더 가까이 오시기를 간청합니다. “,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이사야서 63,19). 우리는 오늘 화답송에서 이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돌아오소서저희를 살려 주소서.”(시편 80, 15. 3). 우리는 자주 우리의 기도를 이렇게 부르면서 시작합니다.. “하느님, 저를 도우러 오소서.” 믿음의 첫 걸음은 우리는 그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는 그분이 우리는 필요하다는 것을 하느님께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대림절과 전례주년의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가까이 계심을 인식해야 하고 그분께 이렇게 말씀 드려야 합니다. “다시 한번 우리에게 가까이 오십시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짐 지우시지 않으십니다. ,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대림절 기도입니다. “오십시오!” 대림절은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고 세상 끝 날에 다시 오시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을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오늘 우리 삶 속으로 오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두 가지의 오심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므로 그분을 초대합시다. 전통적인 대림절 기도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듭시다. “오십시오, 주 예수님”(요한묵시록 22,20). 요한 묵시록은 이 기도로 끝납니다. “오십시오, 주 예수님”. 우리는 매일 하루의 시작에서 그 기도를 할 수 있고 자주 반복해서 그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임 전에, 우리가 공부하거나 우리가 일하기 전에, 결정을 내리기 전에, 우리 삶에 더 중요하거나 어려운 모든 순간에. 오십시오, 주 예수님! 그것은 작은 기도입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입니다. 이 대림절에 그렇게 기도합시다. 반복해서 그 기도를 합시다. “오십시오, 주 예수님!”

 

우리가 예수님께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라고 간청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깨어 있도록 단련시킬 것입니다. 오늘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마지막 말씀의 끝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 말씀은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깨어 있어라(Be watchful!)!” 주님께서 이 말씀을 5개 절에서 네 번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마르코 복음 13, 33-35. 37 참조). 깨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한가지 중대한 잘못은 천 가지 일에 정신이 팔려서 하느님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했습니다. “Timeo Iesum transeuntem” (Sermons, 88, 14, 13), “예수님께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내 옆을 지나가실 것을 나는 두려워한다. 우리 자신의 일상적인 관심사들에 사로잡히면(우리가 이것을 얼마나 잘 아는지!), 그리고 너무나 많은 헛된 것들에 정신이 산만해지면,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 보는 것을 잃어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이렇게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마르코 복음 13, 37) 깨어 있어라, 주의를 기울여서.

 

하지만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지금이 밤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대낮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둠과 고단함 속에서 새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낮의 빛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될 때 올 것입니다. 낙심하지 맙시다. 낮의 빛은 올 것입니다, 밤의 어둠은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심판자가 되시려고 일어나실 것입니다. 그분의 오심을 고대하면서 깨어 있는 것은 우리를 좌절에 압도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희망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세상에 오기를 고대하면서 기다렸던 바로 그것처럼 그렇게 지금 사람 안에 있는 사랑께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하늘 나라에서 기다려 지고 있다면 왜 우리가 이 땅의 관심사들에 사로 잡혀 있어야 합니까? 낮의 빛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 왜 우리가 밤에 대해서 불평하면서 시간을 허비해야 합니까? 왜 우리가 우리를 출세하도록 도와줄 후원자들을 찾아야 합니까? 이 모든 것들은 사라집니다. 깨어 있어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상당히 어렵습니다. 밤에 자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저녁에, 한밤중에, 닭이 울 때, 새벽에”(마르코 복음 13, 35 참조) 깨어 있으라고 들었을 때 좀처럼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그 때들이 그들이 깨어 있지 못했던 바로 그 시간이었습니다. 저녁에, 최후의 만찬 때, 그들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한밤중에 그들은 잠이 들었습니다. 닭이 울 때 그들은 그분을 부인하였습니다. 아침에 그들은 그분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시도록 놓아 두었습니다. 그들은 깨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졸음이 또한 우리도 갑자기 덮칠 수 있습니다. 위험한 종류의 잠이 있습니다. 그것은 평범함이라는 잠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첫 사랑을 잊을 때 무관심으로 만족스러워져 갈 때 오로지 힘들지 않은 존재함에만 관심을 가질 때 그것이 옵니다. 매일 하느님을 사랑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 그분께서 끊임없이 가져다 주시는 새로움을 기다리지 않은 채 우리는 평범해지고 미지근해지고 세속화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천천히 우리의 신앙을 잠식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평범함의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열렬한 갈망이고 변화에 대한 과감한 노력이며 사랑하는 용기이고 끊임없는 전진입니다. 신앙은 불을 끄는 물이 아닙니다, 신앙은 타오르는 불입니다. 그것은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을 위한 신경안정제가 아닙니다, 신앙은 사랑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러브스토리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그밖에 다른 무엇보다 미지근한 것을 싫어하시는 이유입니다(요한 묵시록 3, 16).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미지근한 것을 거부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평범함의 잠에서 우리 자신을 깨울 수 있습니까? 깨어서 지키는 기도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켭니다. 기도가 우리를 순전히 수평적인 존재라는 미지근함에서 우리를 깨우고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더 높은 곳으로 올리도록 만듭니다. 그것이 주님께 우리를 조율하여 맞추도록 만듭니다. 기도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가까이 계시도록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우리의 고독에서 해방시키고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기도는 생명의 활력입니다. 숨을 안 쉬면 살 수 없는 것처럼 바로 그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이 우리는 자고 있는 사람들을 계속 지켜 보는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합니까, 예수님 앞으로 세상의 빛, 역사의 어둠을 가지고 오면서 밤낮으로 전구하는 하느님을 흠숭하는 이들이 필요합니까. 우리는 얼마나 많이 하느님을 흠숭하는 사람들이 필요한지요. 우리는 우리 흠숭의 어떤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주님 앞에서 침묵하는 흠숭 속에 서 있는 우리의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이 평범함, 미지근함입니다.

 

또 다른 종류의 내면적인 잠이 있습니다. 무관심의 잠. 무관심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같은 것으로 봅니다, 마치 그것이 옳다는 듯이. 그들은 그들 주변의 저 모든 것들에 관심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와 우리의 욕구를 중심으로 돌 때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궁핍함에 무관심할 때 밤이 우리의 마음에 내립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두워집니다. 우리는 곧바로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억울하다고 느끼기 시작하고 결국 모든 것에 대해서 음울해 집니다. 그것은 악순환입니다. 요즘 그 밤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내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그들 자신만을 위한 것들을 요구하고 다른 이들의 궁핍함에 눈감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을 무관심의 잠에서 깨울까요? 자선의 깨어 있음으로. 우리를 평범함과 미지근함의 잠에서 깨우기 위해서 기도라는 깨어 있음이 있습니다. 무관심의 잠에서 우리를 깨우기 위해서 자선이라는 깨어있음이 있습니다. 자선은 그리스도인의 고동치는 심장입니다. 심장 박동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바로 그것처럼 그렇게 자선 없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엾어 하고 돕고 섬기는 것이 실패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우리에게 승리를 얻어다 줄 유일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이미 미래, 주님의 낮을 향해 조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이 사라질 때 홀로 사랑만이 남을 것입니다. 바로 자비의 일들로 우리는 주님께 가까이 다가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의 입당송에서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오실 때에 의로운 행실로 그리스도를 만나러 달려 나갈 결심을…[우리에게] 주소서”. 선한 일들로 그리스도를 만나러 달려가는 결심. 예수님께서는 오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나는 길은 분명히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자비의 일들을 지나갑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기도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 즉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느님을 훔숭하고 우리의 이웃을 섬길 때 교회가 밤에 살지 않습니다. 아무리 약하고 지쳐도 교회는 주님을 향해서 여정을 나아갑니다. 이제 그분을 부릅시다. 오십시오, 주 예수님! 저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저희에게 가까이 오소서. 당신께서는 빛이십니다. 저희를 평범함의 잠에서 깨우소서. 저희를 무관심의 잠에서 깨우소서. 오십시오, 주 예수님, 우리의 우리의 흐트러진 마음을 없애시고 깨어 있게 만들어 주소서. 기도하고자 하는 갈망과 사랑하는 욕구를 우리 안에서 일으키소서.

 

 (번역 2020. 12. 03. 목요일 21:58)

 

강론영어원문 ->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0/documents/papa-francesco_20201129_omelia-nuovi-cardinali.html

강론 미사 사진 동영상 ->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20/11/29/messa-nuovicardinali.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m.mariasarang.net/bbs/bbs.asp?index=bbs_sermon_pope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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