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聖최형, 聖전장운님 순교하신 날
( 순교일; 3월9일) |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한 달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혹형과 고문을 참지 못하여 배교하고 석방되셨다. 그 뒤 어머니의 권면으로 배교한 것을 뉘우쳤지만, 사제가 없어 고해성사를 받을 수 없음을 한탄하였다. 1845년 김대건 신부님이 입국하자 고해성사를 받고 열심한 신앙 생활로 교우들에게 모범을 보였고 혼인하여 3남매를 두셨다. 1866년초 장 주교의 명으로 교회 서적 출판에 참여하여 최형, 임치화님을 도와 판각(板刻)을 마련하는 일을 맡았으나, 얼마 뒤 병인박해가 일어나 주교와 신부들이 체포되고 교회 서적들이 적발되는 바람에 전장운님도 3월 1일에 체포되었다. 포청과 의금부에서 가혹한 형벌을 받은 뒤 3월 6일에 형조로 이송되었고, 3월 9일에 사형을 선고받아 그 날로 최형 베드로님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56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셨다. *주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교우 가정에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렵게 살다가 1839년 기해박해에 체포되어 한 달 동안의 모진 옥살이에 잠시 배교하였으나 6년 뒤 김대건 신부의 입국으로 고백 성사를 받은 후 장주교의 명으로 최형, 임치화님을 도와 교회 서적 출판을 위한 판각 일을 하다가 체포되어 서소문 형장에서 56세로 순교하신 성 전장운 요한 님이시여 저희가 마지막 날까지 주님 일꾼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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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 베드로님은 충청도 홍주(洪州)에서 태어나 14세 때 부모의 권면으로 입교하였는데, 그의 가족은 모두 열심한 신자였다. 1836년 마카오 유학길에 올랐던 신학생들 가운데 병사한 최방제(崔方濟)님은 그의 동생이다. 큰누이는 평생 동정이었으며 형 최수(崔燧)님은 병인박해 때에 절두산에서 참수되셨다. 이렇게 독실한 교우 가정에서 자란 베드로님은 1836년 나 신부의 복사로 교회 일에 헌신하셨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뒤 목수 일과 묵주 제작, 교회 서적 출판에 참여하셨고, 장 주교님이 입국한 뒤 교회 서적 출판의 책임자가 되어 큰 공로를 남기셨다. 1866년 장 주교님이 체포되면서 교회 서적들이 적발되자 전장운님도 함께 체포되어 3월 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3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주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
兄은 순교자 최수님, 동생은 신학생으로 마카오 유학 길에 병사한 최방제님이며 큰 누이는 동정녀로 살다가 절두산에서 순교한 열심한 가정 출신으로 장주교님을 도와 교회 서적 출판의 일을 하다가 서소문에서 53세에 순교한 성 최형 베드로 님이시여 님을 기억하는 저희들 가정에 언제나 주님의 등불이 밝게 빛나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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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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