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의 사랑은 질기시다 (요한6,35-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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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21-04-21 | 조회수1,163 | 추천수1 | 반대(1) 신고 |
2021년 4월 21일 [부활 제3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사랑은 질기시다 (요한6,35-40) 35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 어제 하늘에서 내려온 빵(말씀-물)으로 결코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다를 묵상했습니다. 그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한 사람이 앞4장 사마리아의 여인이다. (요한4,13-14)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 이 물- 세상의 물이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하늘의 말씀)은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말씀은 살아 계시며 일하시기 때문이다.(히브4,12 1데살2,13)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시련, 사건들 속에서 절망이 아닌 희망을 주신다. 그런데 그 주님의 물(말씀)을 마신 사람은 사마리아 여인처럼 자신(세상)의 물(말)을 버리는 부인(否認)하게 되는 것이다. (요한4,28-29) 28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29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 = 받아들임과 버림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는가? (다른 분의 묵상으로~) 그 사이에는 한 시간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세상적 목마름의 해갈만 관심을 갖고 있던 여인에게 갑자기 그녀에게 있었던 다섯 남편이야기를 하므로 여인의 수치스러운 실상을 폭로하신다.(그래야 살릴 수 있으니까) 그때 여인은 예수님의 의도대로 자신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비로소 자각했고 그에 대한 증거로 예수님께 “예언자”라 부른다. 그 여인은 그렇게 자신의 수치스럽고 더럽고 추악한 실체를 확인하고 자신의 인생 속에서 정말 해결 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 나오는 방법 밖에 어없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생명수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여인은 참 생명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만 만족할 수 있는, 즉 세상의 물동이를 버린 여자로 바뀌게 된 것이다. 죄에 물든 인간의 비참함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이들은 생명에 대한 갈급함이 없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께 육신의 편안함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없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하고 더러운 상태인지를 아는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자각하고 있기에 세상의 편안함이 아닌, 새 생명의 주님께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비참한 지경의 자신에게 엄청남 하늘의 생명을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6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 세상 창조 이전에 선택한 이들을 보내시는 것이다.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 이들은 본문 35절의 말씀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배부르고 행복의 근원을 삼는 이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라는 생수, 생명의 빵을 먹고 마신 이들은 이제 예수님이 인생의 최고 목적이 된 사람들이기에 더 이상 세상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예스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삶,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고민하고 추구하는 분투속에 그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 하느님의 뜻을 실천 하려고 하늘의 왕좌의 자리를 버리고 이 땅에, 그것도 죄인들을 살리시려 그들의 죄로 저주가 되시어 십자가에 달리시려(죽으시러) 오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처럼 내 힘으로 만들어 놓은 자리를 부인하며 그분의 길을 진리로 따라 걷는 것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 아버지께서 선택하셔서 주님께 주신 이들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구원에 실패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는 기쁜 복음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은총, 하느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며 배반했고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도 실망하여 물고기를 잡으러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주님이 그를 포기 하셨던가? 교회를 박해하며 교인들을 잡아 죽음에 넘겼던 그 사울을 포기하셨던가 말이다. 그들이 돌아오도록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이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잘못 살내고 있다고 해서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끝까지 패서라도(시련, 단련) 구원하시고야 마실 것이라는 말씀이시다. 그래서 사울이 바오로가 되어 전하는 말이~ (로마8,35.38-39)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아멘> *매일미사 서철바오로 사제 묵상글 중에서~ ‘생명의 빵’에 대한 개념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하느님께 받아먹은 만나에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광야 생활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를 하루 먹을 만큼만 거두어들일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신명 8,3)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날마다 만나를 먹으며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여러 가지 곡식이 아니라, 당신을 믿는 이들을 돌보는 당신의 말씀임을 배우게 하셨습니다”(지혜 16,26). 따라서 ‘생명의 빵’은 예수님이며, 예수님의 말씀이고 가르침입니다.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 구원의 완전하심, 말씀을 깨닫고 믿게 하시어 기쁨의 삶을 살도록 힘을 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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