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福者 원경도 요한님 (순교일; 4월25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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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태욱 | 작성일2021-04-22 | 조회수1,072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사신’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던 원경도(元景道) 요한(Joannes)은 경기도 여주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물세 살 되던 1797년에 사촌 이중배 마르티노와 함께 김건순 요사팟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이후 원 요한은 온 가족을 입교시켰으며, 최창주 마르첼리노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부활 삼종 기도를 바치고 성가를 부르면서 하루를 보내다가 체포되었다. 원 요한과 동료들이 여주 관아로 끌려가는 도중에 일행은 원 요한의 집을 지나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노모가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게 해 달라고 포졸들에게 부탁하였으나, 포졸들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신자들을 밀고하라고 독촉하였다. 이때 원 요한은 일행을 대표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더욱이 천주를 배반하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당시 옥중에는 뒤에 체포된 원 요한의 장인인 최 마르첼리노도 함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늙은 여종이 옥으로 달려와 노모와 부인이 슬퍼하고 있는 사정을 전하면서 그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촌인 이 마르티노의 도움을 받아 흔들리려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신유박해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자, 경기 감사는 옥에 갇혀 있는 신자들을 다시 끌어내 형벌을 가하면서 배교를 강요하였다. 그러나 원 요한은 이에 굴하지 않았으며, 동료들과 함께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서로 용기를 북돋워 나갔다. 이때 감사가 내린 원 요한의 사형 선고문에는 “천주교에 깊이 빠져 교회의 지시대로 형에게 제사를 폐지하도록 권하였으니, 이는 인간의 도리를 모두 끊어 버린 행위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에 따라 원경도 요한은, 동료들과 함께 여주로 압송되어 1801년 4월 25일(음력 3월 13일)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는 27세 또는 28세였다.
* 자료집에서 발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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