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눈물을 닦아주시는 하늘 아버지! (사도1,15-17.20-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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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21-05-14 | 조회수2,029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1년 5월 14일 금요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눈물을 닦아주시는 하늘 아버지! (사도1,15-17.20-26) 15 그 무렵 베드로가 형제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그 자리에는 백스무 명가량 되는 무리가 모여 있었다. 16 “형제 여러분, 예수님을 붙잡은 자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해서는,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언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17 유다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우리와 함께 이 직무를 받았습니다. 20 사실 시편에 ‘그의 처소가 황폐해지고 그 안에 사는 자 없게 하소서.’ 또 ‘그의 직책을 다른 이가 넘겨받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1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22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3 그래서 그들은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앞에 세우고, 24 이렇게 기도하였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 25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린 이 직무, 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 주십시오.” 26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마티아가 뽑혀, 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 제비를 뽑았다는 것은 사람의 의견을 모아 뽑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맡겼다는 것이다. 12사도는 반드시 채워져야 한다. 12는 하느님 나라의 완전한 백성을 뜻한다. 하늘의 숫자 3과 땅의 숫자 4가 곱해져 이루어진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의미하는 숫자이다. 그래서 시편의 예언대로 배반자(악마, 사탄) 유다 대신 다른 사람, 사도 마티아가 채워진 것이다. (요한6,70) 7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 열둘을 뽑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하나는 악마다.” = 그런데 성경은 마티아가 무엇을 했는지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마티아의 자리에 그 일을 한 이방인 사도 바오로가 들어가는 것이며(로마1,1참조) 이방인인 우리가 들어가야 함을 의미한다.(묵시5,9-10참조) 그런데 12지파 가운데 마귀가 있었다. ‘단’지파다. (창세49,17) 17 *단은 길가의 뱀 오솔길의 독사. 말 뒤꿈치를 물어 그 위에 탄 사람이 뒤로 떨어진다. = 뱀, 독사, 그 마귀였던 단 지파 역시 묵시에서 빠지고 다른 지파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구약 민수기(1,1-)의 12지파와 묵시(7,5-8)의 12지파가 다르다. 묵시의 12지파에는 단 지파뿐만 아니라 벤야민 지파도 빠져있고, 민수기에 없던 레위지파와 요셉지파가 들어가 혼용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의 백성은 구약의 민족적 이스라엘이 아닌 신약의 영적 이스라엘로 이룬다는 것이다. (로마9,6-7) 6 그렇다고 하느님의 말씀이 허사로 돌아갔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7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다 그의 자녀가 아닙니다.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8 이는 육의 자녀가 곧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약속의 자녀라야 그분의 후손으로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 이사악은 예수님을 모형 한다. 오늘날 12사도가 없듯 이스라엘에도 12지파가 없다. 대부분의 유다인들이 자신이 어느 지파인지도 모른다. 남 유다도 AD70년에 로마에 의해 패망했다. 그리고 온 세상으로 흩어져 섞여 수백년을 살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새 사람이 된, 새 창조가 된 이들로 당신의 나라를 완성하신다는 것이다. *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으나 그 잘못, 죄를 대속하시고 용서하신 십자가의 주님, 그 구원자께 끝내 돌아오지(회개) 않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책임지고 죽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 또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회개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의 길을 버린 교만의 죄이다. 그러나 유다와 같이(처럼) 마귀짓을 했던 베드로(마르14,66-72), 그리고 다른 제자들(마르10,37~) 그리고 사울(사도9,1~)은 예수님이 용서, 진리이심을 믿고 돌아왔다.(회개) 그것이 포도나무의 가지로 붙어있는 것이며, 그 포도나무이신 예수께서 거저주시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먹고 이웃과 나누는 삶, 그것이 선이며 계명지킴이다. (요한15,5.10)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 그런데 주님은 사울이 돌아오도록 그의 명예, 모든 스팩(SPAC, 명세서), 건강까지 뺏어 버리셨다. 아니 그의 그 모든 것이 구원의 헛된, 무용지물임을 깨닫게 하시어 스스로 버리게 하신 것이다.(필립3,3-11참조) 사울의 자기 의, 명예로는 하느님의 善, 義, 救援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경우에 따라서 그런 경험을 하게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재산도, 건강도 잃어보게, 실패를 경험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시기, 질투, 미움의 사건들을 경험하게 하신다. ‘이 세상의 것은 영원하지 못한 것이구나, 영원한 평화를 줄 수 없는 것이구나.’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그러나 우리 혼가 겪게 하시지 않는다. 보호자 성령께서 늘 함께 하신다. 성령께서 시련을 통과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아니 통과하게, 이기게 하신다. 그래서 영적 이스라엘, 하느님의 백성으로 돌라와 하늘의 풍요를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이다. 묵시의 하느님 백성의 모습이다. (묵시7,14-17) 14 “원로님, 원로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15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고 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그들을 *덮는 천막이 되어 주실 것이다.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해도 그 어떠한 열기도 그들에게 내리쬐지 않을 것이다. 17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천주의 성령님! 영의 신앙을 돌아서는 회개의 삶을 허락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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