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진리(길)는 하나다. 하늘의 길을 땅의 길로 착하지 말자. (마태7,6-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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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21-06-22 | 조회수10,35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1년 6월 22일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진리(길)는 하나다. 하늘의 길을 땅의 길로 착하지 말자. (마태7,6-14)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 거룩하고 진주(보석) 같은 하느님의 말씀을 짐승, 다른 민족들에게 주지 말라는 말씀인가? 그러면 전교는 누구에게 해야 하나. 그런 말씀은 아닐 것이다. 먼저 앞5절에서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성경은 모든 인간이 그 욕망과 선악의 눈으로 살아가는 짐승이라 하신다. (코헬3,18) 18 나는 인간의 아들들에 관하여 속으로 생각하였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어 그들 자신이 다만 *짐승일 뿐임을 깨닫게 하신다고. = 그러나 자신이 짐승일 뿐임을 알고 그 짐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청했을 때,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의 말씀도 주셨다. (마르7,26-28) 26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마태15,28)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 자신이 개, 돼지 짐승인 뿐임을 아는 그 자기부인이 된 여자가 바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말씀이시다. 본문에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는 말씀은 ‘거룩한 진주를 짐승의 것으로, 그들의 말로 주지 말라’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들의 의로움, 욕망을 세워주는 선악의 말, 그 계명으로 주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구원은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그 자기부인으로 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기부인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안 되기에 거룩하고 진주인 좋은 것, 성령을 청하라는 말씀으로 이어진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찰하여 그분의 올바른 가르침, 깨달음으로 올바른 길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힘 이신 성령이시다.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생명의 말씀)을 청하는데 돌(선악의 법)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0 생선을 청하는데 뱀(거짓말)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 좋은 것,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 성령이시다.(루가11,13)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 “그러므로”가 아주 중요하다. 앞 (마태5,17)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5장 17절과 본문 7장 12절 사이의 모든 계명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다 완성혔음을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그대로 ‘예수님께 해 드려야 한다,’가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며 황금율인 것이다. 예수님이 내 소원을 들어 주시는 구원자가 아닌, 영의 구원을 위한 길, 진리로 믿는 것이다.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의로움으로 받는 구원임을 믿는 것이다. 그동안 나의 의(義), 열심을 길로 믿고 의지했던 그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만을 길, 진리로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것이다. 그것이 그분께서 바라시는 대로 해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을 문자 그대로 사람의 지혜로 보고, 우리의 열심한 윤리의 삶으로, 남에게 바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실천하는 것이 신앙(황금율)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誤算)이다. 그것은 다른 민족들도 다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사람의 도리(道理)이지 신앙(信仰)이 아닌 것) 사람이 사람에게 원하고 받을 수 있는 것으로는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기에 황금율이 될 수가 없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받는 하늘의 생명, 구원, 그 황금율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윤리가 아닌 하느님의 덮으심,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로 얻는 용서, 생명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 ‘도덕과 윤리의 삶으로 열심히 살아 우리의 구원을 이루자’가 하느님의 진노(震怒)를 산 바벨탑 사건이며 카파르나움 이었다.(창세11,4- 루가10,15참조) 그렇게 살면 다른 민족들의 칭찬도 받고 영광도 받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가르친다. 그 많은 이들이 옳다고 가는 길은 넓은 길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 넓은 길이 영원한 멸망의 길이라 하신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길이란, 많은 이들의 욕망의 눈에 어리석게 보이고(1코린1,23) 인간의 열심, 의로움을 기각해 버리시는, (마태6,33 로마3,24. 이사64,5 참조)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이다. 그 길이 진리(眞理)임을 믿는 것이 영원한 생명의 길이다. 그러나 많은 신앙인들이 협착(狹窄, 좁고) 그 비좁은 길을 가기 싫어한다. (요한12,43) 43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보다 사람에게서 받는 영광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께 선택받은 이들(죄인)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억지로라도 끌고 가신다. (요한21,18)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 그때 그 하느님의 이끄심이 매(枚, 채찍)로, 곧 우리에게 시련(試鍊)으로 감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하느님의 부르심, 사랑의 손짓이라는 것이다. (1베드1,5-7)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멘) ☨ 하느님의 힘이신 천주의 성령님!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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