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돼지 떼와 마귀 (마태8,28-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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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21-06-30 | 조회수6,51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1년 6월 30일 수요일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돼지 떼와 마귀 (마태8,28-34)
제1독서<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창세21,5.8-20) 5 아브라함에게서 아들 이사악이 태어났을 때, 그의 나이는 백 살이었다. 8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다. 이사악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9 그런데 사라는 이집트 여자 하가르가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아들이 자기 아들 이사악과 함께 노는 것을 보고, 10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저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세요.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11 그 아들도 자기 아들이므로 아브라함에게는 이 일이 무척이나 언짢았다. 1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와 네 여종 때문에 언짢아하지 마라. 사라가 너에게 말하는 대로 다 들어주어라.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13 그러나 그 여종의 아들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도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 14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 하가르에게 주어 어깨에 메게 하고는, 그를 아기와 함께 내보냈다. 길을 나선 하가르는 브에르 세바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다. 15 가죽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그 여자는 아기를 덤불 밑으로 내던져 버리고는, 16 활 한 바탕 거리만큼 걸어가서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았다. ‘아기가 죽어 가는 꼴을 어찌 보랴 !’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그는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17 하느님께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래서 하느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가르를 부르며 말하였다. “하가르야, 어찌 된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저기에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18 일어나 가서 아이를 들어 올려 네 손으로 꼭 붙들어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9 그런 다음 하느님께서 하가르의 눈을 열어 주시니, 그가 우물을 보게 되었다. 그는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우고 아이에게 물을 먹였다. 20 하느님께서는 그 아이와 함께 계셨다. 그는 자라서 광야에 살며 활잡이가 되었다.
화답송 시편 34(33),7-8.10-11.12-13(◎ 7ㄱ) ◎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 ○ 주님을 경외하여라, 주님의 성도들아.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는 아쉬움 없으리라.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뿐이리라. ◎ ○ 아이들아, 어서 와 내 말을 들어라. 주님 경외를 가르쳐 주리라. 삶을 즐기고 복을 누리려, 장수를 바라는 이 누구인가? ◎
복음<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마태8,28-34) 28 예수님께서 호수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29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30 마침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31 마귀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33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로 가서는, 이 모든 일과 마귀 들렸던 이들의 일을 알렸다. 34 그러자 온 고을 주민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다.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제1독서(창세21,5.8~20)
하느님께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래서 하느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가르를 부르며 말하였다. "하가르야, 어찌 된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저기에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일어나 가서 아이를 들어 올려 네 손으로 꼭 붙들어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7~18)
여기서 '아이'에 해당하는 '나아르'(naar)는 이스마엘을 가리킨다. 창세기 21장 17절에서 하느님께서 들은 소리가 아이의 목소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창세기 21장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이스마엘도 어머니 하가르와 같이 울었음이 분명하다.
그가 울었던 이유는 행복했던 환경에서 쫓겨난 것에 대한 서러움과 갈증에 지친 나머지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고, 또한 어머니의 대성통곡하는 울음소리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들으셨다'에 해당하는 '와이쉬마'(waishima; and heard)의 원형 '샤마'(shama)는 단순히 '듣다'는 뜻만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여 '경청하다', 들은 바를 '이해하다', '응답하다'는 뜻도 있는데, 여기서도 이 단어는 하느님께서 이스마엘의 심정을 살피시고 어떤 조치를 취하실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두려워하지 마라'에 해당하는 '알 티르이'(al thiri; do not be afraid)는 '전율하다', '무섭다'라는 뜻의 동사 '야레'(yare)에 일회적인 금지를 나타내는 부정사 '알'(al; not)이 함께 쓰인 하느님의 은총과 위로의 말씀이다. 즉 계속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그 두려움을 없애라는 말씀이다.
이 말은 성경에서 두루 사용되었는데, 깊은 절망과 슬픔 가운데서도 겸손하게 하느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지금도 시공을 초월하여 하느님께서 찾아 오셔서 위로해 주실 것임을 보여 준다.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원문에는 이유를 보여 주는 '키'(ki; for)라는 단어가 나오므로, '왜냐하면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로 번역된다. 이것은 바로 앞의 문장과 연결하여 하가르가 이스마엘을 계속 돌보아 주고 붙들어 주어야만 하는 근거가 된다.
또한 이것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의 장래를 약속하셨던 하느님께서(창세16,10; 17,20) 이 구절을 통해 이 약속을 계속 이행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결국 후에 이스마엘의 후손들의 영역이 하윌라에서 수르까지 확장된 것 (창세25,18)을 볼 때 이 약속은 성취된 것이다.
이처럼 이 구절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절망에 빠진 하가르에게 자식의 장래가 번성할 것을 재확인시켜 줌으로써 위기를 극복할 용기를 심어 준 것이다.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아들로 다시 낳읍시다. (마태 8,28-34) 예수님께서 호수 28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께서 하신일을 엑스타시스(육적 쾌감)하며 만족해 하는 것이 뱀의 말을 먹은 마귀 들림으로 그것이 예수님과 상관없는 것이 됩니다.
29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 오늘 복음은 다른 병행 복음과 달리 마귀들린 사람을 둘로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이 악을 대속하여 생명을 주는 그 진리가 아닌 선악의 두 법으로 받아 하느님의 뜻, 하늘의 생명 곧 구원과는 상관없는 자, 또한 하느님도 세상 것과 섬기는 그 두 마음 또한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곧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를 대속하신 내 십자가임을 깨닫지 못해 하나 되지 못하고, 그래서 내 뜻을 위해 내 밖에 십자가로 경배만 한다면 나와 예수님, 구원과는 상관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이 주는 자유도 모르고 온갖 나쁜 종교 행위로 무거운 짐 같은 신앙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30 마침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 돼지는 부정한 짐승.
(레위11,3.7) 3 짐승 가운데 굽이 갈라지고 그 틈이 벌어져 있으며 새김질하는 것은 모두 너희가 먹을 수 있다. 7 돼지는 굽이 갈라지고 그 틈이 벌어져 있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 돼지는 양식을 되새김 질 하지 않으니 부정한 것, 신앙인의 모습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마음을 벌려(열어) 말씀을 받아 되새기는 것이 정결한 것입니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 되새기며 기억(기도)지 않는 것이 참 신앙의 모습이 아니지요.
31 마귀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 마귀도 하느님의 피조물로(창세3,1) 주님의 허락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뱀)는 사람의 감추어진 惡을 드러내어 예수님의 십자가로 용서를 받아, 하늘의 생명,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그것이 아담의 모습인 것, 뱀의 유혹을 먹게 놔두신 후 아담이 자신의 부끄러움(죄)을 보게 하시고 그 죄를 가리려 스스로 만든 사람의 옷(열심, 노력)을 부인하시고, 대신 어린양이 죽어 남긴 가죽 옷을 입히신 것입니다. 그 가죽 옷이 구원의 의로움의 옷이며 하느님 나라 혼인 잔치의 예복인 것입니다. 그 예복을 입지 않고 가면 쫓겨납니다.(마태22,11)
33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로 가서는, 이 모든 일과 마귀 들렸던 이들의 일을 알렸다. 34 그러자 온 고을 주민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다.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 마귀 들린 사람에게서 그 마귀를 쫓아내어 제대로 살게 해 주셨는데 왜? 떠나 달라 했나요. 그 마귀들린 사람 치유보다 자신들의 재물이 더 소중하다는 것이지요. 이 지방 모든 사람들이 부정한 짐승을 소중하게, 귀하게 여기는 마귀 들린 사람들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하느님의 구원의 말씀, 그 약속을 진리로 믿지도, 의지하지도 않으며 그 말씀을 되새기는 올바른 기도도 하지 않으며 자신의 뜻을 위한 빈말 기도만 하는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겁니다.
(요한16,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 무서운, 흉측한 마귀는 사람의 생각, 상상이 만들어 낸 것이지요. 마귀는 착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또 세상의 재물과 권세, 영광을 약속합니다. 거기에 걸려들면 영원한 죽음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어 더 끔찍한 것입니다.
(2코린11,14-15) 14 그러나 놀랄 일이 아닙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합니다. 15 그러니 사탄의 일꾼들이 의로움의 일꾼처럼 위장한다 하여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실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루가4,6-7) 6 사탄이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7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 그러나 그 모든 악은 예수님의 대속, 그 진리의 말씀을 품고 있는 이에게는 손도 대지 못하지요.
(1요한5,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 예수님의 십자가가 대속 하셨으니 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하늘의 진리를 믿는 그가 진리의 말씀이 낳은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기에, 그러니 말씀을 위한 기도해야 합니다,
(루가10,41-42)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 주님! 마르타의 행위의 신앙이 아닌 마리아처럼 말씀을 듣는 신앙으로 돌아서게 하소서~~아멘,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복음(마태8,28~34)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29)~~예수님께서 "가라."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32)
영적 존재로서 영적 지각력이 뛰어난 존재인 마귀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을 향해 '하느님의 아드님'에 해당하는 '휘에 투 테우'(hye tou theu; the son of God)라고 불렀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사람들에 의해 고백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명칭은 아주 중요한 신앙고백적 명칭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 주는데, 이러한 사람들의 고백 이전에 더 먼저 마귀들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인지하였고, 예수님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에 해당하는 '티 헤민 카이 소이'(Ti hemin kai soi; what do you want with us)에서 '당신'으로 번역된 '소이'(soi)와 '저희'로 번역된 '헤민'(hemin)은 여격의 형태인데, 직역하면 '저희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무엇입니까?'이다.
이것은 '당신께서 저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또는 '저희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라는 뜻으로서 자신들의 주장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사적 질문이다.
그리고 '때가 되기도 전에'로 번역된 '프로 카이루'(pro kairou; before the time; before the appointed time)라는 표현은 먼저 마귀도 종말론적 심판과 그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권세의 종말이 올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하느님 나라가 임했지만 그 나라의 최종적인 완성과 마지막 도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한편, 구약에서 돼지는 굽이 갈라지고 그 틈이 벌어져 있지만 새기짐을 하지 않으므로 부정한 짐승으로 분류되어(레위11,7; 신명14,8) 그것을 먹는 일이 가증스런 일로 여겨졌다(이사65,4). 하지만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에 있어서 돼지는 주요 음식이었고, 돼지 사육은 주요 수입원이었다.
본 사건의 배경이 되는 가다라인들의 지방은 이방인들이 살던 지역이었으므로 돼지를 사육할 수 있었다.
병행구절인 마르코 복음 5장 11절에는 2천 마리라는 구체적인 수가 제시된 반면에, 마태오 복음사가는 능력을 행하시는 그리스도께만 초점을 맞추기 위해 구체적인 보도를 단순화시켜 '많은'에 해당하는 '폴론'(pollon; many)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마태오 복음 8장 22절에서 호수로 빠져들어간 주체인 '돼지 떼'를 단수형으로 취급했지만, 물에 빠져 죽은 존재에 대해서는 복수형으로 취급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여기에서 '돼지 떼'로 하여금 내리 달려 호수로 들어가게 만든 내면적 동인은 '마귀'가 제공했지만, 실제 죽은 것은 '돼지 떼'였음을 나타내는 문학적 기법을 썼다.
그렇다면, 왜 마귀는 돼지 떼 속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예수님께 청하였을까? 이것은 그곳 사람들의 재산에 손실을 입히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원인을 예수님께로 돌려 예수님을 경계하게 하고, 그 지방에서 떠나게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마태8,34).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아셨지만, 사람의 영혼 생명이 물질적인 재산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한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 마귀가 돼지 떼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셨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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