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악에서 선으로 변화에 하느님의 관여가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할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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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1-07-10 | 조회수7,11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오늘 독서 20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이런 요셉의 말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는 실례를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요셉의 행동을 얼마나 하고 살지 한번 묵상해봤습니다. 정말 어떻게 하면 요셉처럼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성경에는 그렇게 하게 된 심리적인 배경은 묘사가 되어 있지 않지만 상상으로 그 심리를 묵상해보고 싶습니다. 과연 이런 행동이 인간적인 심성이나 성품으로만 그게 가능했을까가 궁금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건 천성도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요셉의 인생에 개입하셨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추론을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본성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20절과 같은 고백은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고백과도 같은 것입니다. 결국은 신앙의 힘이 요셉으로 하여금 그런 고백을 할 수 있게 이끌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런 것도 한 사람의 인생에 파란만장한 인생과 산전수전을 다 경험했을 때 그런 신앙고백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역사를 하셔서 악을 선으로 바꾸셨겠지만 그 변화에 순응한 요셉의 심경변화를 한번 생각해보면 그 기저에는 형들의 마음에 자기들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후회와 잘못에 대해 회개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작용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모든 것도 하느님께서 역사하셨겠지만, 그건 이 상황에서 배제하고 순전히 이것만 생각해봤을 때 우리의 신앙에 도움이 더 될 것 같습니다. 만약 요셉의 형이 설령 하느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시려고 하시더라도 당사자인 요셉의 마음이 철옹성처럼 마음의 문이 닫혀 있으면 그건 불가능할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과의 예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만약 상황이 그렇다면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느님께서 전지전능하셔서 인간의 삶에 역사하시어 악을 선으로 변화를 도모하시려고 해도 근본적으로 우리 한 사람의 인간 본성 안에 있는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아마 그 근저에는 하느님께서 변화를 이끌어셨겠지만, 그 변화의 밑바탕에는 형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회개의 마음이 요셉의 마음에 악이 작용하지 못하도록 이끌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힘이 과연 무엇일까는 정답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요즘 용어로 말하면 하느님에 대해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는 자신의 믿음과 신앙관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독서에 나오는 요셉의 형들에 적용해 우리네 인생을 되돌아본다면 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머리카락 숫자까지도 다 아신다고 하시는 분이라면 우리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시는 분이신데 우리는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고 할 때가 많이 있을 겁니다. 이 사실을 절대적으로 믿게 된다면 우리는 살면서 설령 본의 아니게 악을 꾸미려고 해도 악을 꾸밀 수 없는 것이 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살면서 악한 표양을 보이기도 하는 존재가 우리의 존재입니다. 악도 선으로 변화가 되려면 하느님의 힘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내적인 마음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중심에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냉정하게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걸 보게 되면 즉시 회개를 하는 마음이 전제가 되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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